성악

[스크랩] 음악적 오르가즘을 선사했던 거세된 남성: 제라르 코르비유의 `파리넬리`

@로마의휴일 2009. 1. 11. 14:50

# 음악적 오르가즘을 선사했던 거세된 남성: 제라르 코르비유의 '파리넬리'

                                      

                                      

  유럽에서 카스트라토라는 남성 가수들이 한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 카스트라토란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를 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여성의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남성 소프라노를 말한다. 이렇게 인위적인 방법으로 남자를 소프라노로 만들었던 것은‘여자여, 잠잠하라’라는 성경 구절 때문이었다. 당시 성직자들은 이 말씀의 행간을 읽지 않고, 그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여자에게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카스트라토였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의 소년과 같이 높은 음역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성 소프라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는 거세된 남자 하면 고우영의 만화 <수호지>에서 밤마다 반금련의 구박을 받았던 무대와 같은 남자를 떠올리지만 사실 거세를 하면 정상적인 성인 남자보다 몸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몸집이 크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강한 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높은 음역에 남성 특유의 강력함을 결합시킨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소프라노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악가로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카스트라토의 인기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대중스타 뺨칠 정도였다. 일단 이름난 카스트라토가 되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부모들이 아들을 카스트라토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였는데, 이탈리아에는 심지어 카스트라토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학교까지 있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17,8 세기 200년 동안 수 천 명의 어린 소년들이 자식을 카스트라토로 만들려는 부모들의 욕심에 의해 희생되었다. 물론 돈푼깨나 있고 가문과 명망이 있는 집에서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자식 하나 출세시켜 먹고 살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이 이런 비인간적인 일을 자행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 다 인기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수 천 명 중에서 불과 너덧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로서의 정상적인 삶을 포기한 채 그늘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다. 시술 과정 중의 비위생적인 처리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평생 불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파리넬리>는 18세기 유럽 무대를 풍미했던 까를로 브로스키라는 한 카스트라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이 된 파리넬리는 그의 예명이다. 까를로 브로스키는 170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중에 작곡가가 된 형 리카르도와 함께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1722년부터 카스트라토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영화는 바로 이 무렵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 있었던 파리넬리와 트럼펫 주자간의 대결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여기서 파리넬리는 트럼펫 주자와 소리 대결을 벌여 악기를 압도하는 목소리로 관중들의 환호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런 파리넬리 옆에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작곡가인 파리넬리의 형 리카르도이다. 사실 리카르도와 까를로 두 형제는 일종의 공생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형이 노래를 만들면 동생이 그것을 부른다. 동생은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얻을 수 있어서 좋고, 형은 동생의 인기를 업고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심지어는 여자까지도.
  
  트럼펫 소리를 능가할 정도로 뛰어난 기교와 가창력을 지닌 파리넬리는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녔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앞 다투어 자신의 오페라에 파리넬리를 출연시켰다. 일단 파리넬리를 출연시키면 흥행에서의 성공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관객들은 카스트라토에게 특별한 것을 기대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교였다. 빠르고 화려한 멜로디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구사하는 것, 높은 음을 아름답고 깔끔하게 내는 것, 아주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 소리를 지속하는 것 등이 관객의 요구사항이었는데, 파리넬리는 가는 곳마다 이런 관객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어 환호를 받았다. 파리넬리가 높은 음을 아주 긴 시간 동안 뽑고 있으면 객석 여기저기에서 경탄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급기야는 기절하는 사람까지 생긴다. 그의 노래에 감동해 두 눈 가득히 눈물을 머금은 한 백작부인은 목에 걸고 있던 값비싼 목걸이를 풀어 파리넬리에게 바친다. 그리고는 그에게 당신이야말로 자기에게 생애 최초로 음악적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 준 남자라고 고백한다.
  
  바로 이 무렵 영국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던 대작곡가 헨델이 파리넬리를 찾아온다. 영국 여왕이 그를 코벤트 가든에 초청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헨델의 제안을 거절하고, 헨델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스승 포르포라를 돕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간다. 그의 나이 29살이던 1734년의 일이다.
  
  런던을 방문할 당시 파리넬리는 성악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의 노래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포로가 되었다. 바로 이런 파리넬리를 전속단원으로 영입함으로써 파산 직전에 있던 포르포라의 극단은 기사회생을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헨델은 빚더미에 올라앉는 처지가 되었다. 파리넬리가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반면에 헨델은 계속되는 흥행의 실패로 결국 오페라 작곡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헨델로 하여금 오페라에서 오라토리오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데 파리넬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파리넬리가 헨델을 위대한 작곡가로 존경하고 그의 음악에서 진정한 예술성을 찾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오로지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쓸데없이 기교만 잔뜩 부리는 형 리카르도의 음악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형에게 진정으로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작곡하라고 권유한다. 파리넬리가 헨델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는 바로 이 시점부터 두 사람의 공생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프레시안


  오랫동안 헨델의 아리아를 열망하던 파리넬리는 결국 포르포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헨델의 아리아를 부른다. 관중의 야유를 들으며 그가 처음으로 부른 헨델의 아리아는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이다. 이 곡은 십자군의 전사 리날도가 예루살렘의 왕 아르간테에게 잡혀간 연인 알미레나를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헨델의 아리아 중에서도 특히 그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전주에서부터 바로크 오페라 특유의 격조가 느껴진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 나의 연인이여.
  당신은 어디에 있소.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요.
  슬픔과 고통의 기다림에 지쳐 나는 밤하늘의 별이 되었소.
  돌아와주오. 부디 돌아와 주오.
  내가 이렇게 울고 있지 않소.
  
  노래를 들으면 알겠지만 바로크 아리아는 장황하게 늘어지는 법이 없다. 낭만주의 오페라처럼 가사와 멜로디를 복잡하게 꾸며대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연인과의 이별을 마구잡이로 슬퍼하지 않고, 일종의 격식을 갖추어 그 슬픔을 표현한다. 그래서 마치 일정한 톤으로 대사를 처리하는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정한 영웅의 슬픔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노래는 이런 다소 부자연스러운 격식을 통해 격조 높은 바로크적 슬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노래의 후반부에서 파리넬리는 이렇게 격조 높은 슬픔의 감정을 담아 손등에 있던 하얀 비둘기를 객석으로 날려 보낸다.
  
  이어서 나오는 곡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헨델의 아리아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이다. 오페라 <리날도>에서 아르간테에게 잡혀간 리날도의 연인 알미레나가 탄식 속에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나를 가혹한 운명 속에 그냥 울게 내버려 두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탄식하게 해 주오.
  숙명은 나의 영혼을 영원한 고통 속에 울게 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나를 내버려두오.
  이 고통으로 내 형벌의 사슬을 끊게 하고
  오직 자비로써 번뇌와 슬픔이 사라지게 해 주오.
  
  만약 이 노래가 없었다면 <파리넬리>는 껍데기에 불과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프레시안


  하지만 과연 파리넬리가 실제로 헨델의 아리아를 불렀을까? 이것이 궁금해서 그로브 음악사전을 비롯해 여러 자료를 뒤져보았지만 그런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파리넬리가 헨델의 아리아를 불렀다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간 픽션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비록 실제의 파리넬리가 헨델과 라이벌인 포르포라나 그의 형 브로스키와 함께 활동했지만 위대한 작곡가 헨델의 음악을 빼고는 이 시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헨델의 음악을 포기하기보다는 결국 픽션을 가미함으로써 헨델의 음악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파리넬리가 내심 헨델의 음악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결국 그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게 되었다는 픽션을 집어넣었다.
  
  만약 이 영화가 사실에 충실한 나머지 오로지 포르포라와 리카르도의 음악으로만 채워졌다면 어땠을까. 파리넬리가 영혼을 울리는 헨델의 아리아 대신 시종일관 밝고 화려한 노래만 불렀다면? 아마 거세된 남성가수의 천박한 스캔들을 다룬 삼류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의 파리넬리는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헨델의 상상력을 고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영화 속의 파리넬리는 헨델의 주옥같은 아리아를 통해 영화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Orchestra de seoul
글쓴이 : 누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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