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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악정보] 성녀 세실리아(음악의 수호성인)

@로마의휴일 2013. 11. 23. 09:38

 

 

 

 

성녀 세실리아(음악의 수호성인)

 

오랜만에 음악의 뒷골목을 거닐게 되었습니다.

오늘에서야 고백하건데, 처음 산책을 계획했을 때는 미음완보 하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급해지더니

나중에는 걷는 것도 버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음악의 뒷 골목에서 벗어나 그림과

조각 이야기가 있는 광장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물론 생각나면 음악의 뒷 골목도

한번씩 들러 골목에 떠 다니는 이야기를 옮길 예정입니다.

 

음악의 뒷 골목 마지막 이야기는 성녀 세실리아에 관한 것 입니다.

성녀 세실리아는 11 27일 축일인데 음악의 수호성인이고, 그래서 성가대의

수호성인기도 합니다. 세실리아는 로마시대에 순교한 초기 기독교도였습니다.

서기 500년 이후에 세실리아 성인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원래는 귀족의 딸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 이미 처녀의 정절을 지키면서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중세에 이르면 귀족의 딸들이 수녀원을 교육기관과 사랑의 도피처로 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초기 기독교 시절에 이런 맹세를, 그것도 어린 나이에 이미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발레리언이라는 귀족과 약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 당일 날 결혼을

축하하는 악기들이 연주되는 동안 세실리아는 마음속으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그 순간 기도에 대한 응답이 왔고 결혼 후 남편은 물론 시동생까지 기독교로

개종시킵니다. 그러나 남편과 시동생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 때문에 순교를 당했고

세실리아도 얼마 후 순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세실리아는 목이 잘려 순교한 첫 번째

인물로 기록에 남습니다. 원래 뜨거운 수증기로 죽이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도끼로 세 번이나 내리쳐도 목이 잘리지 않아서 3일 동안이나 목숨이 이어졌던

세실리아는 피를 흘리는 가운데 자기가 살던 집을 수리하여 교회로 사용하라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집을 봉헌합니다.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 세실리아 교회가 바로

그 집입니다. 9세기 경에 세실리아의 유해를 이 교회에 안치했고 현재의 교회는

1599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하는데 제단 아래에 조각가 스테파노 마데르노가 성인의 유해가

발견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서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땅에 대고

옆으로 누운 자세인데 마데르노는 성녀 세실리아의 유해를 보라, 나는 무덤 속에서

썩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이 대리석에 그와 똑 같은 모습을

재현했노라 라고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순교한지 천 년이 지났지만 유해는 그 모습

그대로 였다고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야후 블로그에서 퍼 왔습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세실리아가 음악의 수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5세기에 갑자기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1584년 로마의 음악원이 생기면서 음악원의

수호성인으로 세실리아를 내 세웠습니다. 원래 음악을 하는 몇몇 조직에서 (길드라고

합니다) 세실리아를 길드의 수호성인으로 내 세웠고 이후 화가들을 통해서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들고 있거나 (힘이 장사였을까요?) 작곡가로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악가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세실리아가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자리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화가들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세실리아 성인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축하 음악제가 전 세계에서 매년 개최되게

됩니다. 세실리아 성인의 축일을 축하하는 음악제는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당시 왕궁이나

귀족들을 위해서만 개최되던 음악을 공개 장소를 끌고 나와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음악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1차대전 때 영국군과 독일군이 장기간에

걸쳐 참호에서 대치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추운 겨울 먹을 것도 모자라고 더구나

크리스마스 전야였던 날, 영국군 진지에서 독일어로 된 거룩한 밤—‘이 들려왔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독일군 진지에서 영어로 된 거룩한 밤—‘이 화답송으로 들려왔고

자연스럽게 얼마 동안의 휴전이 이어졌습니다. 참호에서 나온 군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서로 적군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마도 하늘에서 보고 계셨을 세실리아 성인의 입가에 웃음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출처 : Paul`s Friends
글쓴이 : 폴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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