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슬란과 루드밀라)서곡
글린카
- 이곡은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라 일컫는 미하일 글린카가 푸시킨의 서사시 "루스란과 루드밀라"를 소재로 작곡한 오페라의 서곡이다.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1842년에 초연된 글린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줄거리에 있어서나 음악에 있어서 모두 러시아의 민속적인 소재로 작곡되었다.
- 키예프의 대공의 딸 루드밀라가 악마에게 납치를 당하자 대공은
딸에게 청혼한 3 인의 귀공자들에게 딸을 구해오는 사람을 사위로 맞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인 기사 루슬란 왕자가 악마를 타도하고서 마침내 딸을 구출하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공의 딸과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이 오페라의 서곡은 명랑하고 경쾌한 분위기와 더불어 변화가 많고 쉬지 않고 연주되는 선율이 러시아의 민속적인 색채와 결합하면서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글 린 카
Glinka, Mikhail Ivanovich(1804.6.1~1857.2.15) 러시아
그의 삼촌의 집에는 러시아의 대부호만이 자랑하는 사설 관현악단을 가지고 있었다. 밀라노에서 작곡가로 인기를 얻었으나 러시아풍의 작곡을 지망, 1833년 귀국중에 베를린에서 덴에게 작곡을 배웠고 부친이 사망하자 러시아로 돌아가 러시아의 국민적 음악의 창조를 강조, 가극 《황제에게 바친 목숨》 등을 작곡하였다. 1842년 에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를 초연하였으나 성공치 못하고 1844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베를리오즈의 지원을 받아 관현악법을 배우게 되었으며, 그 동안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작곡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을 공부하였으며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1833년 에는그는 베를린에서 덴(Dehn 1799~1858)에게 작곡을 배웠기도 하였으며 음악 예술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겸하여 체득할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 음악이 서유럽의 음악을 따라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러시아의 국민적인 소재를 사용하였다. 그의 음악은 국민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결합으로 국민주의의 사상으로 성숙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오페라 [이반 수사닌 Ivan Susanin]과 푸슈킨의 시를 저본으로 한 오페라 [루슬란과 뤼드밀라 Rusoan i Lyudmila]를 1842년에 발표하였다. 1856년 그는 베를린으로 가서 은사 덴을 방문하고 고대 악곡의 선법을 연구하였다. 그는 마침내 러시아의 음악을 세계적인 것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러시아 근대음악의 시조로 불리며, 뒤에 그의 지시에 따라 발라키레프, 세로프 등 젊은 음악가들이 그의 이념을 계승하여 국민음악파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영향권에 있던 러시아의 음악계를 진정한 러시아 음악의 창조를 제창하여 러시아 음악의 방향을 설정하고 민족성을 중시하여 빌리나(Bylina 러시아의 서사시, 민요)로부터 설화등 민족음악을 전승하였고, 외국의 민족음악을 연구, 고전적 형식과 단순한 화성, 온음계적인 선율 전개에 의해 러시아적 작풍을 완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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