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useppe Verdi, Nabucco, 2002
나부코 - Nabucco 제3막 2장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Chorus of the Hebrew slaves (바빌로니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바빌론에 끌려와 노예생활을 하는 히브리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으로 '이탈리아 제2의 국가'로도 알려져있는 유명한 곡이다) 베르디의 세번째 오페라이자 첫 성공작인 ‘나부코’는 이탈리아 국민에게 다른 어떤 오페라 보다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특히 그의 밀라노 라 스칼라 입성에서 첫 대성공을 거둔 오페라 '나부코'중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 밑에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감동을 줌과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오랜 분열과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 통일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국애를 일깨우고 강한 활력을 불어 넣었다.
나부코 왕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베르디의 대작 오페라'나부코'는 유태인들의 시련과 신앙의 승리를 기본 줄거리로 하면서 사랑과 결투.복수, 권력에 대한 야심,회개,용서 등 극적인 내용을 두루 담고 있다. '나부코'초연 이후 베르디는 밀라노시 전체의 주인공이 되었다. 베르디의 모자, 넥타이가 장안의 유행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의 가사는 작곡가 베르디를 침체에서 일으켜 세운 구절이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고, 다음 작품을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잇달은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초연이 실패하자 낙담한 베르디는 붓을 팽개치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는 실의에 빠진 그에게 막연한 위로 대신 먼저 작곡 의욕이 솟을 만한 대본을 구하는 일이 급했다. 메렐리는 완벽한 ‘나부코’의 대본을 마련하여 베르디의 집,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왔다.
베르디는 어느 날 낯선 대본을 펼쳐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전체 내용은 구약성서 열왕기 하편에 나오는 것으로 바빌로니아 왕국의 통치자 나부코왕(성서상의 이름은 느브갓네살)이 유대민족을 침략하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에게 잡혀간 유대인들이 핍박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이야기였다.(구약 성서 예레미야,열왕기 하,다니엘서에는 바벨론왕 나부코의 사적에 관해 씌어 있다. 나부코 도노조르왕은 BC 605년부터 BC 562년까지 통치하면서 이집트와 시리아를 격파해 하무라비왕 이래 대군주로 칭송을 받았으나 만년에 폭정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 병에 걸려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혔던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시온을 그리는 마음을 달랬다. “가라,내 마음이여,금빛 날개를 타고…”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를 애절하게 갈망하는 합창이었다. 그 속에서 조국을 그리며 자유를 구가하는 가사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슬픔에 빠졌던 베르디에게 그야말로 금빛 날개를 달아준 것이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로 시작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절망에서 희망의 등불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메렐리의 격려 속에서 ‘나부코’는 합창곡뿐만 아니라 힘찬 오페라로 완성되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특히 극중의 합창들이 절망과 우수에 빠져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줬다. 독립과 통일을 바란 국민들은 베르디를 애국적인 우상으로 삼고, 작품이 연주될 때마다 열광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포로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노예들의 합창을 국가처럼 불렀다고 한다.
1842년 이 작품이 초연될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작품 속 줄거리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의 애국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특히 3막 2장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이탈리아 국민의 ‘해방가’가 됐고, 베르디의 장례식에서도 이 노래가 불렸을 정도다. 그 때문인지 이날 저녁 공연 때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끝난 후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는 그칠줄을 몰랐고 이에 화답하듯 이 노래는 그 자리에서 ‘앙코르’로 다시 연주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