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스크랩] 베에토벤: 장엄미사(작품 123)

@로마의휴일 2008. 8. 21. 18:29

카페 '향기로운 삶의쉼터'에서 옮겨온 음악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새벽 배동인:

 

베에토벤 / ♬장엄미사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 NBC Symphony Orchestra

Missa Solemnis in D major, Op.123

베에토벤 / 장엄미사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5년 간에 걸쳐 완성되었고 베에토벤 자신이 최고작으로 평가한 장엄미사(Missa Solemnis)는 종교적 교향곡으로 불리울 만큼 성악가들이 기악적 성악부분을 처리할 수 있어야 연주가 가능한 작품이다. 베에토벤은 교회음악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이 『장엄 미사』에 대하여는 스스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베에토벤은 이 작품을 쓰면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확신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작품을 출판하기에 앞서 필사 스코어의 예약을 받기 위해 프랑스 국왕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한 궁정에 추천장을 보내고 있는 사실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베에토벤은 첼터(Carl F. Zelter 1758-1832)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은 오라토리오로도 연주할 수 있습니다"(1823년 1월 23일자)라고 쓰고 있으며 '1807년에 미사곡 C장조를 지금까지 행해지지 않았던 수법으로(1808년 6월 8일자 편지)' 작곡했지만 이 『장엄 미사곡』도 단순한 미사곡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 곡에서 합창을 헨델의 합창곡, 특히 오라토리오『메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Agnus Dei에서 Dona nobis pacem에 주어진 선율은 『메시아』할렐루야 코러스 중 And He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의 선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너무나 길고 복잡해서 보통의 전례용 미사곡이라기 보다는 미사 통상문을 사용한 목소리와 악기에 의한 교향곡적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전곡 연속듣기

악곡의 구성

제1곡 : Kyrie (3부로 나눠진다)

1부 - assai sosteuuto. Tutti로 시작해서 합창이 강렬하게 Kyrie를 노래하면 테너가 메아리치듯 여기에 응답하는 매우 감동적이고 엄숙한 부분이다.
2부 - Christe eleisou. Andante assai ben margato. 독창의 눈부신 활약과 여기에 가담하는 합창이 인상적이다.
3부 - 제1부를 매우 강렬하게 반복한다.


Kyrie

제2곡 : Gloria(영광송) 6부로 나눠진다.

1부 - “하늘엔 하느님게 영광”이 빠른 템포의 합창이 Alto, Ten. Ba. Sop.순서로 노래된다. 이어서 Bas. part가 “땅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를 노래한다.
2부 - 중창과 합창이 “전능하신 하느님이여 왕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주를 흠슴하나이다. 높이 받드나이다. 주의 영광 크시기에 감사하나이다” 라는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3부 - 합창이 강렬하게 “주 하느님, 하늘의 왕,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노래한다.
4부 - 느린 속도로 속죄를 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죄를 사하여 주소서”
5부 - Allegro Maestoso "주 예수 크리스트. 지극히 높으신이여,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영광. 아멘“
6부 - Allegro ma non troppo. 장관을 이루는 합창이 “성부께 영광. 아멘”을 외친다.


Gloria

제3곡 : Credo (사도신경) 3부로 나눠진다.

1부 - ff의 Tutti로 관현악이 터진뒤 합창이 Bass ->sop 로 차례로 등장하면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느님을 내가 믿으며,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를 노래한다.
2부 - adagio.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의 몸에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3부 - tempo는 1악장의 것.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이 베에토벤의 체험에서 오는 확신을 가지고 노래한다.


Credo

제4곡 : Sauctus(거룩) 전주곡을 사이에 둔 2부로 나눠진다.

1부 - “하늘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이 충만하고, 지극히 높은곳에 호산나”가 조용한 목관의 전주로 시작되어 4중창으로 신비롭고 경건하게 노래된다.
2부 - Benetictus.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도다. 지극히 높은곳에 호산나“가 경건함과 강렬함으로 노래된다.


Sauctus

제5곡 :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3부로 나눠진다.

1부 - Adagio, Bass Solo가 “세상 죄를 지신 하느님의 어린양”을 엄숙히 노래하고, 남성4부합창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세 번 응답한다.
2부 - Allegro vivace. 합창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소서”라는 간절한 호소를 한다.
3부 - presto "내적인 평안의 확신과 강렬한 기도(베토벤 자신이 초고에 쓴것) “가 강렬하게 노래되고, 흥분과 감동에 넘친 관현악의 연주로 끝난다.


Agnus Dei

베토벤 / 장엄미사(Missa Solemnis) D-dur Op.123

1818년 여름, 베에토벤의 친구이자 후원자, 또한 가장 고명한 제자이기도 하였던 루돌프대공(Archduke Rudolf)이 오르미츠(Olm tz)교구의 대주교가 된다는 소식을들은 베에토벤은 대공의 취임 미사에서 연주할 미사곡을 쓰겠다는 계획을 굳히게 된다. 그의 취임은 1820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베에토벤이 이 미사곡의 스케치를 시작한 것은 1819년 부터였다.

그러나 작곡의 진척은 의외로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베에토벤은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 무려 5년간이라는 긴 세윌을 씨름해야만 했다. 1819년 8월,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당시의 빈 궁정악장)와 그의 친구 요한 호르자르카는 뮈들링에 있는 베에토벤을 방문하였다. "그때가 오후 4시였다. 우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아침나절에 하인들이 도망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하녀가 베에토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지만 베에토벤이 곧 식사를 들지 않는 바람에 그만 둘은 잠들고 말았고, 뒤늦게 식사를 하려던 베에토벤이 음식 맛이 형편없다 고해서 심한 말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음식이란 제 때에 들어야 제 맛이 있는 법인데). 우리는 출입문을 잠근 거실에서 베에토벤이 크레도(Credo)의 푸가(Fuga)절을 노래하고 외치고 박자를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이 무서울 정도의 소리에 장시간 귀를 기울인 다음 그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문이 열렸다. 베에토벤이 공포가 날 정도의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는 우리들이 엿듣고 있었다는 것이 불쾌했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곧 이날의 사건에 관해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큰 소동이었습니다. 모두들 도망갔지요. 나는 어제 낮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그를 달래고 옷을 갈아 입혔다. 호르자르카는 배가 극도로 배고픈 거장에게 뭔가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그는 대위법이나 그의 영원한 음악적 숙적들과 치열한 정신적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 아래서 저 위대한 장엄 미사는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뮈들링의 생활은 천진난만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즐거움을 그에게 주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가사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느 날, 미사곡 {키리에}의 초고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너무도 놀란 베에토벤이 집안을 온통 뒤집으며 찾은 결과 부엌에서 버터와 치즈를 싸둔 종이가 바로 그 악보였다. 하녀는 그것을 휴지로 생각했던 것이다. 격노한 그는 즉각 하녀를 해고했다. 1820년의 4월부터 12월까지 고용인을 교체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서 이 무렵 그가 겪은 어려움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4월 17일 하녀 채용/ 5월 16일 해고/5월 19일 하녀 퇴직/5월 30일 하녀 채용 7월 1일 하녀 채용/7월 28일 하녀 밤중에 도망감/7월 30일 운테르되플링의 가정부 채용 (하녀가 없었던 탓?)/ 8월 10, 11, 12, 13일 4일간 레르헨펠트에서 식사 8월 28일 가정부 고용기간 끝남/9월 6일 여사환 고용/10월 22일 여사환 그만둠 12월 12일 여사환 채용 구스타프 말러의 장인인 안톤 쉰들러는 이 비참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 이 장엄 미사만큼 저주스런 생활 환경에서 생긴 예술 작품은 없을 것이다"

베에토벤은 20세 때 두 곡의 칸타타를 썼고, 33살 때 오라토리오 '감람산위의 그리스도', 37살에 미사 다 장조를 써서 종교음악 부문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으나 미사 다 장조에 대한 평판이 썩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하자 언젠가는 또 하나의 미사곡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루돌프 대공이 대주교가 된다는 소식이 그의 열망에 불을 당기게 했던 것이다. 최초의 그의 의도는 가톨릭의 전례에 충실한 미사곡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미사 원문의 충분한 연구, 그레고리오 성가와 교회 복음악의 탐구를 철저하게 이행했다. 이 무렵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다짐이 기록되고 있다. "참다운 교회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수도승들의 옛 교회 성가를 탐구하는 것, 또한 모든 그리스도교적 가톨릭적 시편이나 성가 전반의 완전한 詩形學과 나란히, 가장 올바른 번역에 있어서 원문의 도막 짓는 법을 연구할 것"

그러나 이 미사곡이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줄곧 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과연 이 작품이 가톨릭의 전례음악인가? 아니면 비교회적(非敎會的)인가?" 하는 논란이다. 파울 베커(Paul Bekker, 1882∼1937, 미국, 음악 평론가,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장엄 미사에 있어서는 예배 의식에 대한 갖가지 고려, 또 갖가지 직접적인 관여가 포기되고 있다. 베에토벤은 교회와 세속 사이에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의 눈이 가는 곳이 자기의 교회이다. 그는 자신의 재단을 세속의 한가운데에 쌓았다.

종교적인 울타리를 그는 참지 못했다"고 분석하면서 이 미사곡이 특정종파의 도그마에 종속되지 않은 범종교성과 심지어는 종교를 초월 하는 독특한 베에토벤적 신앙고백이 깃든 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하면 가톨릭 음악의 권위자인 펠러도 "정신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나 전례적이 아니다"고 못박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이 미사곡은 헨델의 '메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파에 구애받지 아니한 범종교성과 계몽주의적 휴매니티의 발로(發露), 베에토벤의 개인적인 열렬한 신앙고백이 이룩한 찬란한 구원의 미사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1830년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전례에서 연주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서 그 어느 미사곡보다도 훌륭한 전례음악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실제로 미사 전례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놀라울 만큼 일치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마지막 악장이 그의 세속적인 음악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법으로 종결되고 있다는 사실(주지하는바 처럼 베에토벤의 마지막 악장의 코다는 예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이지 않은가?), 쌍투스 악장에서 <호산나>부분이 갑자기 끝나고 고요한 전주곡이 그것에 계속되고 있는 사실, <베네딕투스>가 그토록 황홀하게 노래되고 있는 사실들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베에토벤이 얼마나 전례와 음악의 일치를 위해서 고심하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노테봄(Martin Gustav Nottebohm, 1817∼1882, 독일의 베에토벤 연구가)이 쓴 [제 2 베에토베니아]에 따르면1820년경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가 잇달아 완성되었고, 다음 해와 1822년에 걸쳐 {쌍투스} {아뉴스 데이}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의 공식적인 사본(寫本)이 루돌프 대공에게 전달된 것은 1823년 3월 19일이었고, 그날은 그가 대주교로 취임한지 3년째가 되는 날의 저녁 이었다. 미사에서 이 곡이 연주된 것은 1823년 4월 18일 페테르부르크에서 <가리친> 황태자의 공식방문 미사에서 였다. 그리고 공중 앞에서의 초연은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에르토르 극장에서 행해졌다(이때 연주된 곡은 키리에, 글로리아, 아뉴스 데이 3곡이다). 그의 제 9번 교향곡도 함께 초연 되었다. 악보는 1827년 4월에 출판되었다(쇼트社).

루돌프 대공은 이 작품이외에도 피아노 트리오 내림 나장조, 바이올린 소나타 제 9, 10번, 두 곡의 첼로 소나타(op.102-1, 2번)를 헌정 받은 인물로서, 오스트리아의 테레제 女帝의 손자이고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아들로 태어나 베에토벤에게서 피아노를 배웠고 당대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연주 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베에토벤의 후원자로서도 일생동안 변함없이 물심양면 으로 도움을 베풀었던 역사상 보기 드문 예술 옹호가이자 진흥자이기도 하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 음원출처: http://jnjmuse.cnei.or.kr

위의 음원은 '수진'님께서 올려주셨습니다.

 

 

 

출처 :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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