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스크랩] [펌]김광석 <타는 목마름으로>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랄까?

@로마의휴일 2009. 10. 5. 00:38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 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70년대, 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얼마 안 되는 말들은 그들의 시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숨죽여 흐느끼며 남몰래 불러보았던 그 간절한 이름,

"민주주의"

반드시 외쳐보고 싶었던 그 한 마디,

"민주주의여 만세!"

너무나 절실했고, 너무나 애절했기에, 사람들은 이 노래를 가슴에 새기고 영혼에 새겼다. 영혼에 새기고 그로써 이어졌었다. 그 한 마디를 위해,

"민주주의여 만세!"

시인은 그렇게 시대를 노래했고 시대의 삶을 노래했고 시대의 영혼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다시 노래로 불려져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적셨다. 폭풍은 지나갔다 여겼던 90년대 그 하찮은 여명에도.

그러나 무정한 것이 시간이라... 어느새 시간은 흘러 그 뜨겁던 가슴은 식고 그 절규하던 영혼 역시 침묵으로 들고 말았다.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며 울분을 터뜨리던 젊은 피 역시 닳고 낡아 시절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사람이 죽는 일이야 자연의 섭리다만 그가 그렇게 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어느날 느닷없이 들려온 그의 자실소식 - 아마 천번째 공연을 마치고였을 것이다. 천 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을 이뤄준다던 동화처럼 천 번의 감동을 지우고 그는 마침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영영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그리고 다시 1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또 한 영혼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려 하고 있다. 육신은 살았어도 영혼은 죽었으니, 아니 영혼이 살았어도 이미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니 그 역시 영영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 노래를 지었던, 그 피끓는 가슴을 노래했던 바로 그 시인이.

그러나 역시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달까...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그가 곁에 없음을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아직 그가 살아 있음을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죽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아픔일까? 죽었는데 살아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안타까움일까? 분명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있다는 듯 숨쉬고 있고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이란.

그러나 그는 스스로 먼 길을 떠났고 우리는 그가 떠났음을 보았다. 남은 것은 그가 떠난 그의 잔재일 뿐. 이미 그가 떠났는데 그가 그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노래는 남았고.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에
서툰 백묵 글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그가 남기고 그가 남긴 노래다. 먼저 가버린 그와 또 이제 떠나는 그의 노래다. 수많은 피와 눈물과 절망과 절규와 그리고 자그마한 희망과 열정과 꿈들과... 사람은 가버렸지만 그렇게 노래는 남았다.

다시 한 번 불러본다. 그 노래를.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다시는 불러서는 안 되었을 그 노래를.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다시는 부르지 않기를.
다시는. 다시는...


사실 7,80년대 민주화진영의 변절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시대의 젊음과 지성에 있어 당면한 요구는 군사독재의 종식이었다.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민족주의자였고,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자였고,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자였다. 미국을 구원자로 보는 이들과 미국을 침략자로 보던 이들과, 역사를 보는 다른 시각들과... 단지 그것을 묶어주던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었고 독재에 대한 증오였다.

87년 6월 항쟁은, 그리고 김영삼의 문민정부는, 그리고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그들에게 새로운 계기였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었고 이제 다른 목표를 찾아 나설 때가 된 것이다. 이제것 군사독재에 억눌려 있던 그들의 꿈들을. 물론 개인적인 탐욕까지 포함해서.

군사독재는 이렇게 시대의 지성과 이상마저 짓밟고 왜곡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단지 군사독재가 지나고 사람들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고. 새삼 알지도 못하는 맑스를 들먹이며 같은 편에 섰던 이들을 비난하는 그 역시 단지 자신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변절이라 했지만 그들은 결코 변절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동안 억눌러 놓았던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시절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 채. 그 시간들 속에 자신의 시간을 남긴 채.

지금의 그들이 과거의 그들이 아니듯, 과거의 시간 역시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남긴 것들은 그 시간이 만든 것들이다. 사람이 죽으면 남기는 것은 이름이 아닌 그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속에 남겨진 것들인 것이다.

불러본다. 그 노래를. 그 노래를 처음 지어 불렀던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시간들을 위해. 그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노래를.

살아오는 저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에
서툰 백묵 글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어쩌면 때로 살아남았다는 것이 더 큰 슬픔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잔인한 것이 산다고 하는 것이므로. 살아 남았고 살아가고 있기에. 단지 살아있기에. 아마도. 아마도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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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백향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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