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Dies irae, Requiem, Verdi. Zubin Meta

@로마의휴일 2011. 1. 19. 10:18

 

REQUIEM in D Minor Op.48 - In Paradisum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Gabriel Faure 1845-1924

 

Caroline Ashton, soprano

Faure Op48 Requiem D Minor Caroline Ashton Soprano 7 In Paradisum

John Rutter

The Cambridge Singers

City of London Sinfonia

 

레퀴엠 (Requiem)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가톨릭 장례 미사 중 첫 곡인 입당송(Introi tus)은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라고 시작하는데 그 첫 단어인 Requiem’을 따서‘레퀴엠 미사’라 고 하여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Missa pro defunctis)를 통칭했고, 그것이 레퀴엠이라는 독특한 음악 양식을 만들어 냈다.

미사의 한 형태인 레퀴엠의 구성을 알려면 일반 미사가 어떤 형태로 드려지는가를 알아야 한다. 미사때 드려지는 기도를 보면 키리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글로리아 (아버지께 영광)·상투스(거룩하시다) 베네딕투스 (축복)·아뉴스 데이 (신의 어린 양) 등과 같은 통상문(Ordinarium, 늘 변함이 없다는 뜻)이 있다. 그와 비교해 음악 형식으로서의 레퀴엠 미사는 전례 미사의 기도문인 고유문(Properium, 절기나 행사에 따라 변한다는 뜻)을 거의 모두 가사로 쓰고 있기 때문에 더 확장된 모습을 가지게 된다.

레퀴엠은 미사 고유문인 입당송(Introitus), 층계Graduale), 연송 (Sequentia), 봉 헌송(Offertorium), 성체 배례송(Communion)의 전례문들을 포함하게 되고, 그 대신에 일반 미사곡에 사용되는 가장 긴 부분인 글로리아(Gloria)와 크레도(Credo)는 제외되고, 진노의 날 (Dies irae)가 첨가되는데 이 부분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사의 진행 순서에 따라 인트로이투스(입당송)·키리에·그라두알레(층계송)·세쿠엔티아(진노의 날)·오페르토리움(봉헌송)·상투스 - 베네딕투스·아 뉴스 데이·코뮤니온(Lux aeterna luceat eis, 영원한 빛)의 구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코뮤니온 뒤에 ‘리베라 메’(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나 ‘인파라디줌’(천국에서) 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작곡가의 선택에 따라 레퀴엠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 음악 작곡가인 호앙 카레롤스의 ‘죽은 자를 위한 미사’(1680년경)는 이런 레퀴엠의 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작품 개요 및 구성

레퀴엠은 그의 부친이 사망(1885)했을 때 착수하여 1887년에 완성되었는데, 7곡으로 되어있고 멜로디는 그레고리우스 성가와 같이 종교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가곡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구성에 있어서는 교회음악의 전통적인 독창과 합창의 응창(Responsorial, 應唱), 2성부 사이의 교창송(Antiphonal) 및 독특한 카논(Canon)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전통적으로 레퀴엠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곡되는 '진노의 날(Dies irae)'은 생략되었다. 절제와 간결성이 포레 레퀴엠의 특징이며, 특히 그의 가곡을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표정적이고, 또한 화성적 미묘함과 표현적 다양성, 그리고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포레의 레퀴엠이 독특한 것은 그것이 부드럽고 조용하며 심판과 저주가 아니라 용서와 희망에 차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개성이 수많은 레퀴엠들 가운데 포레의 것이 지니는 독특함이다. 베르디나 베를리오즈의 장대하고 극적인 레퀴엠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레퀴엠은 오히려 이교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작곡가 자신의 말은 이러하다.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었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인 것이다."

 

제 1곡. 입당송, 불쌍히 여기소서(Introit et Kyrie)

금관의 무거운 전주후에 주에게 죽은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는'입당송(Introitus)'이 이어지고, "불쌍히 여기소서 (Kyrie elei-son)"가 반복됩니다. 전곡을 통해 계속 볼 수 있는 오르간이 마치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 2곡. 봉헌송(Offertoire)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죽은자의 영혼을 죄와 지옥에서 구해달라는 기원문입니다. 알토와 테너합창의 "영혼을 구하소서"에 이어 바리톤 독창으로 "주께 희생의 기도와 찬양을..."이 등장하고, 앞의 합창부를 재현하는 "주 예수 영광의 왕이시여(O Domine Jesu Criste)"의 합창으로 끝을 맺습니다.

 

제 3곡. 거룩하시다(Santus)

하프와 바이올린의 반주로 알토 성부가 빠진 3성의 합창으로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 하늘과 땅에 가득한 영광.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를 노래합니다. 호른의 총주와 함께 시작되는 "Hosanna inexcelsis" 부분이 압권입니다.

 

제 4곡.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Pie Jesu)

현의 피치카토 반주와 함께 애절한 표정의 소프라노 독창으로 재차 죽은 이의 안식을 구하는 이 부분에서 전곡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고 있으며, 포레의 지극히 프랑스적이며 서정적인 예술혼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5곡. 주의 어린 양(Agnus Dei)

무척이나 가요적인 선율로 이루어져 그 멜로디가 쉽게 귀에 들어와 입에 붙는 합창의 아름다움은 또 한번 포레의 감성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듭니다. 앞 부분이 오르간과 금관의 총주로 막을 내리고 Requiem aeternam 부분이 재현되면서 끝을 맺습니다.

 

제 6곡.구원하여 주소서(Libera me)

저음 현의 피치카토 반주와 함꼐 바리톤 독창이 영혼의 구원을 갈망합니. 3개의 트롬본이 등장하면서 '진노의 날(Dies irae)'부분이 이어지며, 'Requiem aeternam'의 휴지부를 거쳐 앞선 독창부분을 합창으로 재현합니다.

 

제 7곡. 천국에서(In Paradisum)

동형 반복의 오르간 반주가 효과적으로 사용된 이곡은 여느 레퀴엠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부분이며,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려는 작곡가의 의도가 담긴 곡입니다.

 

영화 THIN RED LINE

1942년, 남태평양의 과달카날섬. 한 마리의 거대한 악어가 물 속을 유영하는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악어의 모습이야 당연히 흉측스러운데 여기에 어둡고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의 음향이 덮치는 형국이 되니 곧 어떤 어마어마하거나 흉측스러운 불행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이 음악은 또 다른 전쟁영화 ‘플래툰’을 상키시킬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 원주민 꼬마가 돌로 조개를 찧으며 놀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포레의 레퀴엠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천국에서(In Paradisum)’가 녹색 톤의 화면과 어울린다. 아이들은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하고 유방을 드러낸 여인들은 아이들 건사에 여념이 없다. 장차 이 아름다운 낙원에서 벌어질 끔직한 전쟁, 무수한 죽음들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상황 설정이다. 이 모든 장면들을 아우르며 흐르는 포레의 그 아름다운 음악은 표제 그대로 천국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 어떤 영화음악보다도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장면이다.

 

Faure Requiem

평생을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지낸 Faure는 특이하게도 무교회 주의자였습니다. 완전한 무신론자이기를 거부한 그는 동시에 19세기 불란서 천주교회가 강요하는 숨막히는 교리에 무작정 순종하기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극렬한 반항주의자도 아닌 고요한,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의 주관이 매우 강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Requiem'은 그의 그런 성격을 나타내는 주장이면서, 동시에 당시 교회의 전통에 대한 작은 반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전통, 즉 연옥과 지옥에서 심판을 받을 영혼들의 두려움… 그리고 죄인들이 받을 영원한 죽음... 등에서 해방이 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Faure의 Requiem은 모짜르트나 다른 작곡가들의 해석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작곡가들은 Requiem을 통해서 전능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반면 Faure는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그리고 고요하고 영원한 영혼의 평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Faure 는 Requiem을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썼다는 주장이 가장 효력있게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 곡을 쓰는 과정에서 어둡고 두려움을 주는 부분을 다 빼고 간결하고 물처럼 흐르는 서정적인 그림을 그려 냈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Requiem에 사용한 Ochestration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우선 목관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금관은 몇몇 사본에 따라 조금 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2개의 Horn만을 사용했으며, 현악 부분에서도 전례적으로 violin이 주축을 이루는 기법을 피하고 대신 음색이 더 어두면서도 윤기있는 viola를 더 많이 사용한 점등이 매우 특이합니다. 그리고 Faure는 이 곡 전체를 통해 오르간을 중심적으로 사용한 특징이 있습니다. 때로는 인상파의 전위로도 불리는 Faure는 이 Requiem에서 마치 인상파 음악의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보여 주는데 이는 그의 처음 의도대로 '영원한 안식'과 '영혼의 평화'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모짜르트 레퀴엠 라단조 KV 626

[레퀴엠]은 보통 진혼곡 - '죽은 자의 혼을 달래기 위한 노래'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 교회의 예식 음악이다.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이라는 requies에서 나온 용어로, 죽은 사람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한 카톨릭 미사를 가르킨다. 노래 첫 가사에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가 나오는 데서 이곡의 이름이 유래한다. 보통 미사곡과는 달리 영광송과 신앙고백송은 부르지 않는다.

르네상스 이후로 많은 작곡가들이 레퀴엠의 가사를 이용해 곡을 썼는데,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드보르작, 베르디, 포레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후에는 슬픈 마음이나 위로를 표출하는 음악에 레퀴엠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레퀴엠 미사가 아니라 어머니를 추모해 만든 대규모의 성악과 관현악을 위한 작품이며, 벤자멘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은 라틴어 가사와 1차 대전의 비극을 노래한 윌프레드 오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포레의 레퀴엠을 들어보면 완전한 희열에 차 있는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의 레퀴엠에서는 죽음이란 것이 고난과 불행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작곡가의 믿음이 느껴지는데, 때문에 포레의 레퀴엠은 평안함과 따스함을 전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아주 무서운 레퀴엠도 있다. 베르디의 레퀴엠이 그것인데 곡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을 받는 분위기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작품은 전형적인 기독교 스타일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슬프고 처절하며 아주 인간적이다.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정말 끊기 어려워 못가겠네!"하는 우리나라 상여 소리와 비슷한 분위기다. 그야말로 죽은 자를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1791년 7월 어느 날 밤, 쿵쿵쿵!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곡을 하다 피곤해서 쓰러져 있던 모차르트는 깜짝 놀라서 "이 늦은 밤에 누굴까?" 하고 문을 열었는데 이상한 풍채의 회색 양복을 입은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딱딱한 표정으로 서명이 없는 편지 한통을 전하고는 곧장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편지의 주인공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말고 진혼곡을 작곡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한 것이다. 생활비 때문에 할 수 없이 작곡을 수락한 모차르트는 그날밤 이후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 모차르트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날 이후 병이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이 곡을 쉬지 않고 쓰기 시작하였고 "이상해. 그 사나이의 그림자가 눈 앞에서 떠나질 않아. 혹시 내 죽음을 기다리는 저승사자가 아닐까?" 죽기 4일 전까지도 그는 죽음의 그림자에 몸을 떨면서도 진혼곡 작곡에 몰두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 곡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는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이나 지듯 불행한 예감대로 그해 12월 5일에 장티브스로 세상을 뜨고 만다. 모차르트의 불길한 예감을 안고 탄생한 곡이 바로 진혼곡「레퀴엠」이며 '라크리모사'까지 밖에 쓰지 못하고 죽었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곡은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곡을 부탁한 사람은 1세기가 지난 후에야 밝혀졌는데 '발제크'라는 백작이었다.  그는 아내의 기일에 이곡을 자기의 작품으로 발표하려고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곡은 1793년 12월 14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의 죽음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붙어 다닌다. 작곡을 의뢰한 사람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 선배 작곡가 살리에리였고, 모차르트는 그가 가져온 죽음에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발제크'백작이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이라고 본다.

「레퀴엠」은 그가 초기에 작곡한 미사곡들에 비해 조금 우울한 분위기를 띄지만 뒤쪽으로 가면서 때로는 강렬한 선율로, 또는 극적인 효과로 절정에 이르게 하는 선율로 기도처럼 변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함이 넘쳐 흐른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썼다는 '라크리모사' 부분을 들으면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의 시체가 공동묘지에 버려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모차르트 음악의 분위기는 대부분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지만 옆에 이유 없이 짜증을 잘 내고 자주 신경질을 부리는 친구가 있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고, 친구랑 다퉈서 화가 나고 속상한 날에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울릴 것이다.

음악에 대한 모차르트의 강한 정열과 집념을 떠올리면서 듣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레퀴엠]은 빈에서 해마다 '모든 성인의 날'이면 황실의 예배당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는 오랜 전통이 세워졌고, 이는 20세기에 들어와 겪게 된 다양한 정치적인 변혁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