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Gustav Mahler" Symphony No.5 in C# Minor /말러 교향곡 제5번
@로마의휴일2007. 9. 15. 15:12
"말러" 교향곡 제5번 올림다단조
'Gustav Mahler' Symphony No.5 in C# Minor
오늘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시리즈 그 다섯번째로
5번 올림다단조(c# minor)를 올립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Gustav Mahler (1860-1911) 구스타프 말러
Symphony No.5 in C# minor
Gustav Mahler 교향곡 제5번 올림다단조
웅대한 자연 시(詩)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죽음과 부활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주는 공포에서 시작해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한 4번, 앞의 네 곡은 분명 젊은 사람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모습은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하지만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더욱 단단히 압축된,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은 순수한 기악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말러의 5번은 앞의 네 곡에서 보여준 방황의 결산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특징짓는 방황과 고뇌는 아직 끝나기에는 멀었으니, 훗날 9, 10번에서 말러는 다시 삶에의 집착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5번은 그가 걸어간 길이 한복판에 가장 견고하게 서 있는, 그의 인생의 표적과 같은 곡이다. 말러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외적인 표제를 붙인 일이 없다. 말러는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고 엄숙하며 인간이 모든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는 말을 남겼다.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 가극장의 감독으로 4년째 알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고, '괴짜',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벗고 작곡가로서도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아름답고 총명한 알마 쉰틀러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 작곡하기 시작한 이 곡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적나라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20세의 젊은 알마에게 결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이다.
작품 배경 & 개요
교향곡 5번은 여러모로 앞의 교향곡과 다른 점을 많이 보이지만, 특히 론도 피날레의 마지막 악장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푸가 패시지와 복잡한 대위성부(초기 교향곡이 대위 선율들은 좀 더 투명하고 분명하여 단선율적인 경향이 있다)들이 가장 두드러진다. 1901년의 봄과 여름에 말러가 바흐의 다성음악 연구에 몰두한 것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러는 '바흐의 음악이 모든 음악의 씨앗이며 그보다 더 위대한 더성음악은 없다'고 여겼으며, '바흐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른다'고 친구들에게 고백했다.
브루노 발터가 지적했듯이 말러의 교향곡 5번은 그 어떤 곡보다도 절대음악에 가깝다. 그러나 역시 말러가 말러이니 만큼 음악 외에 그 어떤 것도 이 곡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데, 베토벤 이후 독일 교향곡이 가지고 있었던 '고난에서 광명으로'이 모토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각 악장들의 의미를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어렵지만은 않다. 스케르쪼에 관해서라면 말러는 바우러-레히너에게 '삶의 정점, 낮의 밝은 빛 속에 있는 인류'라고 말한 적이 있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다지에토는 당연히 알라 말러를 염두에 두어도 될 것이다.
작품 구성
제 1 부
1st. mv. Trauermarsch
제1악장 죽음의 행진,
In gemessenem Schritt. Streng. Wie ein Kondukt.
<신중한 속도로, 엄격하게, 장례행렬처럼>
'장송 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어린 시절 듣던 군대 나팔 소리의 추억에서 끌어낸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한다. 처절한 장송곡의 리듬과 격렬하고 사나운 절망과 슬픔의 기나긴 패시지가 교차한다. 변형된 행진곡 멜로디를 플루트가 연주하는 끝 부분은 귀기(鬼氣)를 느끼게 한다. 말러가 진정한 천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가만 보면 말러가 교향곡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형식들을 새롭게 자신의 곡에 활용하고 있다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것은 100년 전 베토벤이 이미 응용한 것이다. 베토벤은 이미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하였고(말러는 이 비교를 싫어하였다), 느리고 빠른 변주곡을 사용하였고, 푸가 패시지를 집어넣었고, 장송 행진곡을 사용하였다.
이런 방법들은 말러의 곡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송 행진'에서 조금 더 나아가 '죽음의 행진'이란 것은 말러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2번 교향곡의 시작이 그렇고, 3번 교향곡의 첫 악장에서도 장송 행진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1번 교향곡의 3악장은 물론, 심지어 가곡에도('북치기 소년'이라든지, '기상 나팔'이라든지) 죽음의 행진곡을 집어넣는 작곡가는 없을 것 같다.
말러의 다섯 번째 교향곡도 바로 이 죽음의 행진으로 시작된다. 첫 머리에 등장하는 트럼펫의 군대 풍 팡파르는 말러에게 전형적인 것이다. 장례 행진을 사용하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팡파르로(그것도 어두운) 교향곡을 시작하다니, 자주 들으니까 익숙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어쨌든 말러는 이 주제의 셋잇단음 리듬이 언제나 속도를 붙여서 연주되기를(정말 군대의 팡파르처럼) 악보에서 지시하고 있다.
이 악장이 구조에 대해서는 말러 학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가 없다. 즉 주부(c 샤프 단조) - 트리오 1(갑자기 빠르게 열정적으로, 난폭하게, b 플랫 단조) - 주부( c 샤프 단조) - 트리오 2(a 단조) - 코다(c 샤프 단조)이 구조이다. 그런데, 두 번째 트리오의 대부분이 첫 번째 트리오에서 등장하는 주제에 기초하고 있고, 토다는 주부를 변형시킨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파트 A - 파트 B - 파트 A1 - 파트 B1 - 파트 A2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음과 죽음의 행진이 교차하고 있는 곡이지만 트리오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이런 감정이 강렬한 집중력을 가지고 휘몰아친다. 절대 교향곡의 형식 속에 이런 식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강하게 집어넣을 수도 잇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이런 점이라면 다음 악장이 그 강도에서 더 할 것이다.
"구스타프는 어떤 형태로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지낸 날이 하루도 없었다" 고 알마가 회상한 것은 아주 먼 훗날이었다.
2nd. mv. SturmIsch bewegt 제2악장 폭풍 같이
Sturmisch bewegt. Mit grosster Vehemenz.
<폭풍 같이, 격렬함을 가지고>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격렬하게.'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1악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고뇌가 더욱 사납게 물결친다. 음악적 갈등이 심화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극적인 반전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지평이 열리곤 하는데 이 기법을 '개파(durchbruchsform)'라고 한다. 분노의 테마에서 평화의 테마로 반전이 일어나는 대목의 '개파'는 이 곡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전곡의 클라이맥스는 2악장 종반에 펼쳐지는 금관의 찬란한 코랄이라고 할 수 있다. 얼어붙은 하늘을 뚫고 한순간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말러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찬란한 대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유령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다시 눌려버리고 만다.
말러의 5번 교향곡에서는 엉뚱하게도 첫 악장이 아니라 두 번째 악장이 선명한 소나타 형식(스터디 스코어의 첫 번째 에디션에서는 제시부에 반복 지시까지 있었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말러는 자필 악보에 이 악장은 '주 악장(Hauptsatz)'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 악장은 앞의 악장과의 연계가 분명해서 트럼펫 팡파르의 셋잇단음 리듬이 악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제2주제는 앞 악장의 두 번째 트리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물론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에 등장하지 않는 점도 몇 가지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재현부 마지막에 D 장조 코랄이 갑자기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화가 나서 투쟁하고 있는 듯한 곡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것으로서 긍정적인 분위기의 마지막 악장을 예고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악장은 또한 1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자주 비교된다. 격렬한 '지옥' 주제에서부터 '천국' 주제로 전개되어 가고, 악장 지시도 '폭풍같이'인 것이다. 성격이 음험한 많은 말러리안들이 이 악장에 사로잡혀 잇는데, 파울 베커에 따르면 심지어 이 악장이 '열정의 분출하는 힘과 내용의 강렬함이 담긴 것으로, 교향적 예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2 부
3rd. mv. Scherzo. 제3악장 스케르쪼
Kraftig, nicht zu schnelll
<활기 있게, 너무 빠르지 않게> 스케르쪼. 말러가 "삶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 sumus)"라고 표현했듯이, 삶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상념을 뿌리치지 못하는 말러의 이중성을 들려준다.
말러가 '스케르쪼'란 낱말을 악보에 직접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스케르쪼 구조와는 조금 달라서 소나타 형식을 빌려와, 주제는 발전되고 재혀되기도 한다. 설명한다면, 주부 - 트리오 1 - 주부의 짧은 재현 - 트리오 2 - 발전부 - 재현부 -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부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트리오 1이며, 재현부에서는 상당히 변형되거는 했지만 그래도 주부의 주제와 두 트리오 모두 등장한다.
호른 협주곡이라고 불릴 만큼 호른 독주가 곡 전체에서 활약하며 말러의 교향곡에서 빠뜨릴 수 없는 렌틀러(오스트리아의 민속 무곡)도 등장한다. 말러의 스케르쪼 중에서는 드물게 아이러니나 패러디 등의 비뚤어진 심성이 없다. 점점 피날레의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제 3 부
4th. mv. Adagietto 아다지에토
Sehr langsam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인 이 곡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와서 유명해진 부분이다. 관악기들은 쉬고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이다. 폭풍 사이에 환상처럼 잠시 맛보는 평화라고 할까? 하지만 싸늘한 햇살 속에서 꾸는 피곤한 꿈처럼 쉽게 깰 것만 같은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다. JFK 의 장례식에서 연주 되었던 저 유명한 Adagietto 악장이다.
12분 정도 연주되는 결코 짧지 않은 이 음악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시거나 진정한 평화를 찾고 싶으실 때 정말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음악에 몰입하신 후 문득,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 드시면 바로 그제서야 이 아름다운 말러 교향곡 4악장의 연주가 끝났음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음악을 감상하시면 마치 밤사이, 세상사람 아무도 몰래 내린 눈이 천지를 온통 깨끗하고 하얗게 뒤덮은 아침 고요하게 눈 앞에 펼쳐 져 있는, 순결처럼 빛나는 백색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싸늘한 겨울 아침, 온통 하얗게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가에서 명상에 잠기 듯 그 고요함에 동화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Full Orchestra의 연주를 기본으로한 교항곡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이 4악장은 관악기를 모두 쉬게한 채,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이 아름다운 악장은 분명히 말러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이 곡이 루키노 비소콘티의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더라도(정말이지 시종일관 이 음악이 흐른다) 이 곡은 누군가에 의해 유명해졌을 것이다. 알마 말러가 이 곡의 주제이자 목적지인데, 이 에피소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빌렘 멩겔베르크이다. 그는 악보의 여백에다 '이 아다지에토는 구스타프 말러의 사랑의 고백이다. 말러는 편지 대신 이 곡의 원고를 보냈고, 알마는 말러에게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써넣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이 이야기를 멩겔베르크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알마 말러 역시 뛰어난 작곡가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고, 멩겔베르크는 이 에피소드를 알고 잇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남의 연애 이야기에 대한 지식의 과시는 가히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심지어 악보의 다른 빈곳에는 '나의 태양,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잇는지'로 시작되는 시까지 적고 있다. 말러 수집가(?) 혹은 학자인 길버트 카플란이 늘 이 곡은 죽어 가는 슬픔이 아니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근거에서이다. 많은 지휘자들이 이 곡을 10분이 넘는 길이로 연주하는 반면 카플란은 발터와 함께 7분대에서 마무리하고 잇고, 아바도는 이 보다는 조금 길지만 9분대에서 연주한다. 다행히 말러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롤이 발견되어서 카플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잇는데, 이 피아노 롤을 들으면서 카플란은 벅찬 가슴을 안고 감동에 못 이겨 말했을 것 같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Mort A Venezia
루키노 비스콘티 Luchino Visconti, 1971년, 칼라, 130분, 이탈리아
영원한 아름다움은 과연 있다. 어두운 화면이 서서히 밝아져 오면 차츰 희미한 파도의 넘실거림을 알아볼 수 있다. 검은 빛 바다를 밝히는 여명과 함께 흐르는 말러 교향곡 5번은 알 수 없는 심장에 여린 떨림을 일으킨다. 천천히 드러나는 한 척의 증기선 위에 구스타프는 창백한 안색에 담요로 무릎을 덮고 책을 손에 들고 있지만 차마 책에 집중할 수 없는 뭔가 산란하고 복잡한 표정이다. 영화의 시작을 여는 이 시퀀스는 아주 천천히 바다 심연으로 침잠해 가듯 헤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어 결국에는 죽음에 다다르는 한 예술가의 갈등과 고뇌를 극도로 압축해 놓았다. 평화로운 휴양지의 한가로움 뒤에 드리우는 죽음과 같은 사랑의 그림자는 도덕과 순수를 음악에 담아 예술이라는 것을 만들어 온 이 음악가의 영혼을 뒤흔들고, 그것을 감당해내는 탐미적인 시각은 서서히 관객을 잠식한다.
5th. mv. Rondo-Finale 제5악장 론도 - 피날레
Allegro
<알레그로> 피날레. 여러 가지 점에서 1악장 장송 행진곡과 대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5악장에 이르면 1악장의 행진곡에 표현된 고통과 슬픔은 떠들썩한 기쁨의 함성으로 반박되는 것이다. 2악장에서 잠시 연주되었던 금간 코랄은 여기서 진정한 환희의 합창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나 5악장은 지나치게 가볍고 들떠있어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5악장의 기쁨을 단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곡은 서주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중간에 상당히 많은 푸가 패시지가 삽입되어 있다. 말러가 그토록 공부한 바흐의 다성음악은 이 곡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푸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 악장인 것이다. 이 악장에 대한 학자의 의견은 대체로 양분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페흐트나 파울 베커 등의 좀 오래된 세대들은 '삶의 의지', '힘을 향한 의지', '지상의 삶에 대한 찬가' 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 아도르노를 선두로 한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고, 아도르노는 "말러는 형편없는 예스맨이다. 그의 목소리는, 니체가 가치를 주장할 때, 그 자신이 이 '극복한다'는 역겨운 개념을 연습할 때처럼, 깨뜨려진다. 그는 마치 즐거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어 놓았다." 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양분된 해석에 공통된 것은 결국 이 곡이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긍정적인 악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D 장조 코랄은 밝은 빛 속에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사실 생애에서 거의 유일하게 흠 없이 행복한 순간에 있었던 말러였기에 이런 곡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러가 브루크너와 가끔 비교되지만, 이 두 작곡가가 완전히 다른 점은 바로 이 코랄에서 나타난다. 두 작곡가 모두 교향곡에서 즐겨 코랄을 사용했지만 브루크너는 한번도 이 곡에서 쓰인 것과 같은 경박한(?) 코랄을 쓰지 않았다. 말러와는 달리 그에게 음악은 종교와도 같이 성스러운 것이었는지 그는 언제나 교회 코랄만을 사용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작곡한 9곡의 교향곡(10번은 아다지오 악장만 존재)들은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져 많은 녹음들이 존재하며 주위에서 구하기도 매우 용이하다. 실제로 예전에는 번스타인, 솔티, 쿠벨릭, 클렘페러, 발터 등의 음반이 고작이었으나 지금은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수도 없이 다양한 레코딩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 내한했던 인발/ 베를린심포니를 비롯하여 6월에 내한하는 에센바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이젠 연주회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말러의 교향곡을 찾을 수가 있다.
실제로 말러의 교향곡은 난해하다기보다는 그 규모나 형식에 있어 그저 조금 당황스럽다 뿐이지 그렇게 멀게만 느낄 이유는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적 과장을 극한까지 펼치면서도 고전주의를 결코 버리지 못 한 게 바로 말러였으니까. 따라서 이미 모차르트나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등의 교향곡, 관현악곡을 꼼꼼하게 들었던 청자라면 말러의 교향곡들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5번 교향곡의 종악장의 장엄한 푸가는 역시 종악장에 장대한 푸가를 지닌 모차르트의 "주피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면 너무 억지스런 주장일까? 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면 외에, 그의 전 교향곡, 아니 전 음악을 통하여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염세사상, 또는 인간적 고뇌를 이해하는 일만은 그다지 수월하지 않다. 따라서 표제나 가사를 이해한 상태에서 곡을 듣는 것도 말러의 교향곡을 쉽게 듣는 데 큰 단서를 제공한다.
이제부터 본인은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들으시려는 분께, 간단한 곡 설명과 함께 미약하나마 "감히" 그 교향곡들에 대한 감상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인의 경우 말러 교향곡을 처음으로 접한 시기는 고 1때이다. 그 때 들었던 곡은 1번 교향곡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DG). 피날레인 4악장을 주로 들었는데 사실 그 때까지 그렇게 뼛속 깊은 곳을 시원하게 만들면서 몸서리치게 감동적이었던 곡은 아마 차이코프스키의 6번 3악장이나, 베토벤 5번 4악장 빼고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들었던 곡은 차분한 4번 교향곡. 그리고, 대학교 신입생 시절 브루노 발터/ 뉴욕필의 연주로 그 유명한 2번 "부활" 교향곡을 듣게 되었는데, 하여튼 지금도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 2번 교향곡을 뽑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제 막 말러에 익숙해지고 싶은 분들께 - 어떤 분들은 성악이 딸린 곡부터 들으라고 하시지만 - 본인은 언제나 처음 작곡된 1번 교향곡을 추천한다. 신비로운 도입부에 이어 소박하게 펼쳐지는 풋풋한 1악장, 경쾌하기 그지없는 2악장, 관능적이다 못해 퇴폐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래서 더욱더 좋은 3악장, 후련하고 뜨거우며, 환상적이고 장엄한 4악장의 피날레. 어느 하나 안 좋은 악장이 없는 이 1번 교향곡을 먼저 듣게 된다면 말러라는 그 복잡한 세계에 다소 쉽게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되며, 이 곡에 익숙해지면 말러의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저절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2, 3, 4번은 모두 성악이 등장하고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시리즈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악곡집인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주제가 수시로 그 형태를 바꾸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번 교향곡은 5악장 구성이며 종악장에 합창이 등장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과 비슷한 곡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 두 곡 모두 종악장에 합창이 나오긴 하지만 "부활" 교향곡의 경우 곡이 끝나는 1/3 지점에서 등장하며, "합창"교향곡처럼 폭발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 들을 때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곡이지만, 끈기있게 접근하면 "부활" 교향곡은 최고의 감동을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송행진곡의 1악장, 느리고 차분한 2악장, 재밌고 부분부분 화끈한 3악장, 알토 독창이 매력적인 4악장. 그리고 부활의 모티프가 찬연히 울려 퍼지는 5악장으로 구성되며 연주시간은 80분 정도.
3번 교향곡은 4관 편성이라는 큰 규모와 6악장이라는 구성 자체, 그리고 90분 전후의 연주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말러에 익숙한 분이라면 몰라도 처음 들으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4번은 10개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소탈한 곡으로, 처음 접하는 분들께 1번 다음으로 추천할 만한 곡이다. 화끈한 구석은 없지만 끈적거리는 1악장과 천국의 노래가 딸린 4악장이 매우 훌륭하다.
다시 기악곡으로 넘어와서 5번 교향곡은 어두운 1,2악장(장송행진곡)만 잘 넘기고, 3악장의 다소 기괴하고 심난한 스케르초만 통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기막힌 아다지오 4악장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어서 심장을 흥분시키는 엄청난 피날레의 5악장이 자리잡고 있다.
6번은 "비극적"이란 부제가 붙어있는데, 제목처럼 실로 끝없이 비극적인 곡이다. 1악장, 2악장 모두 무시무시하고도 처절한 분위기이며 조금 부드러운 3악장이 이어진다. 하지만 30분이 조금 넘는 4악장을 듣게 된다면 말러 식의 그 처절한 감정표현에 몸서리치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곡은 가끔 초연 형식처럼 2악장과 3악장, 그러니까 스케르쪼와 안단테 악장을 바꾸어 녹음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바비롤리/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EMI)
7번은 "밤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으며 5악장 짜리의 곡으로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다. 1악장은 장송행진곡이고 2, 4악장은 느끼한 밤의 노래이며 3악장은 음산한 스케르쪼. 문제는 5악장인데 씩씩한 출발은 매우 고양적이지만 주제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무척 산만한 경향이 있다. 악장 간 연계성도 전혀 없기 때문에 본인은 이 작품이 상당히 현대적인 곡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불레즈(DG)나 틸슨 토마스(RCA)의 훌륭한 연주 탓에 이러한 불식을 다소 해결하긴 했지만... 따라서 처음 말러 교향곡을 들으실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는 곡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다시 성악이 나오는 8번은, 합창단, 관현악단을 포함하여 천 명의 인원이 연주한다고 해서 이른바 "천인 교향곡"이라고 불리며 1부와 2부로 구성 되어있다. 1부는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라는 라틴어 가사에 곡을 붙였으며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1부는 스케일이 무척 크고 끝없이 환상적인 대작이지만, 2부는 괴테의 파우스트 종막에 곡을 붙였으며 60분이란 연주 시간 때문에 끈기가 상당히 필요하다. 단, 독일 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익숙한 장면과 가사 덕분에 의외로 친해질 가능성은 크다. 천인 교향곡임에도 불구하고, 500명 남짓으로 연주한 아바도/ 베를린 필의 CD(DG)가 녹음, 연주 모두 훌륭하며, 2004년 최신 녹음인 래틀/ 버밍엄시 오케스트라의 연주(EMI) 또한 선명하고 생생하게 말러의 세계를 그려냈다.
기악곡인 9번은 기존의 8개 교향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아다지오의 4악장은 눈물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아마도 죽어가는 이 고독한 작곡가의 비애가 가득가득 담겨서이지 않을까? 10번은 미완성 교향곡으로 아다지오 악장만 남아있다. 물론 아다지오 악장 하나이지만 연주시간은 30분 정도로 무척 길기 때문에 처음 듣기에는 약간 난해할 수 있다. 나중에 데릭 쿠크 박사가 이것저것 단편들을 모아 완성시켰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형식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말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누구는 이렇게 연주했네 하는 식의 어설픈 글들만 적다가 (물론 사이사이 조금씩 언급하긴 했지만) 말러의 곡들에 대해 하나하나 돌아보게 되니 스스로도 주욱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모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반복 청취가 상당히 중요하다. 반복에 또 반복을 거듭하면 어느 순간 곡의 주제가 파악되고, 그러다가 자연스러운 흥얼거림 속에서 결국 음악을 외워버리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좋은 음악 감상이 아닐까 싶다. 특히 긴 시간으로 인해 인내심이 요구되는 말러 교향곡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이제 슬슬 결론을 내려보자.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듣는 분이라면 제일 먼저 1번을 듣고, 그 다음 비교적 부담없는 4번이나 화끈한 5번을 들은 다음, 자연스럽게 성악(합창)이 나오는 2번이나 8번으로 넘어가면 좋을 듯 하다. 이어 9번을 들으며 잠시 상념에 잠긴 다음, 6번을 통해 비참함에 한 번 몸서리 쳐본 후, 이제 여유가 된다 싶다면 3번이나 7번, 10번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떨까.
반복되는 말이지만 고전음악을 들음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 비단 말러의 교향곡 뿐 만 아니라 - 약간의 인내와 시간과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글 출처 : sunslife.com
Gustav Mahler (1860-1911) 구스타프 말러
보헤미아에서 독일어권 유태계의 자손으로 태어난 말러는 빈 음악원에서 작곡, 피아노, 지휘를 배웠다. 빈 음악원 시절 그는 휴고 볼프와 같은 방을 썼다고 한다. 1880년경부터 그는 지휘자와 작곡가의 일을 시작하여 이내 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류블리아나, 카젤, 프라하, 라이프치히 등을 거쳐 1888년 부다페스트 왕립오페라단의 지휘자로 취임했으나 3년을 못 채우고 떠나 함부르크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일했다.
1897년엔 빈 궁정오페라단의 지휘자로 옮겨 셈족 반대운동으로 사임하기까지 10년동안 이 곳에서 지휘했다. 1898년부턴 빈 필하모니도 지휘하면서 말러는 유명한만큼 바쁜 사람이 되었다. 그 때문에 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던 시간은 매년 여름의 휴식기에 한정되었다. 이 여름 휴식기를 이용하여 그는 10개의 교향곡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을 작곡해냈다. 그러나 이 기간은 또한 말러에게 있어 슬픔의 시기였다.
4세밖에 안된 그의 딸이 죽는 비극과 아내 알마와의 불화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나온 곡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였다. 1907년 그는 미국으로 떠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과 뉴욕 필을 정기적으로 지휘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재개했으나 건강을 크게 다쳐 1911년 4월에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한달 후, 말러는 사랑하는 딸의 무덤 곁에 묻혔다. 말러의 작품세계는 10개의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의 가곡이 주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