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제 1 막 「북경 왕궁 근처의 광장」
해질 녘 성문 앞. 관리가 나타나 투란도트 공주의 신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반드시 한 나라의 왕자여야 하고 또 공주가 내놓은 수수께끼 3가지를 풀어야 하며 만약 그 수수께끼를 다 풀지 못하면 목이 잘려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오늘 저녁 달이 뜰 무렵 문제를 맞추지 못한 페르시아의 한 왕자가 참수당할 예정이라고 선포한다.
소식을 들은 군중이 제각기 처형 광경을 보러 가자고 일제히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자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위병들이 출동한다. 소란통에 한 눈 먼 노인이 쓰러지고 동행하던 처녀가 도움을 청한다. 그 목소리를 듣고 "아버님!"하고 달려온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지금까지 행방불명으로 소식이 끊겼던 노인의 아들 칼라프였다. 노인은 지난날 타타르 국의 왕이었던 티무르이다. 전란으로 나라를 잃고 충직한 여자 몸종인 류의 부축을 받으며 신분을 감춘 채 북경에 와 있었던 것이다. 도끼날을 갈고 있는 망나니들 앞에서 왕과 왕자는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마침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군중들은 달에게 소원을 빈다. 멀리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투란도트 공주가 궁전 위 난간에 나타난다. 사형장으로 향하는 페르시아 왕자를 보고 사람들이 그를 용서하라고 외치지만 공주 투란도트는 차갑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한다. 여기서 칼라프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고, 그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곧 그는 아버지 티무르와 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수수께끼를 풀어보리라 결심하고 왕궁 대문 앞에 매달아둔 징으로 달려간다. 막 징을 치려는 순간 저 멀리 사형장에서 페르시아 왕자의 "투란도트~!"하고 외치며 죽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관리들인 핑, 팡, 퐁이 나타나 칼라프를 보고 어리석은 도전일랑 하지 말라고 야유섞인 말투로 충고하지만 칼라프는 물러나지 않고 더욱 결심을 굳힌다. 그 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죽은 왕자들의 망령이 나타나 죽어서도 공주를 그리워한다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망나니가 사형집행이 끝난 페르시아 왕자의 목을 가지고 등장한다. 류가 울면서 "들어주세요 왕자님(Signore, ascolta!)"를 부르며 칼라프에게 제발 무모한 도전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칼라프는 "울지마오, 류!(Non piangere, Liu)"를 부르며 결코 도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이를 지켜본 핑, 팡, 퐁이 젊은이의 무모함을 비웃고, 북경시민들이 일제히 부르는 합창속에 막이 내린다. 제 2 막 [제1장 ㅣ 막사] 황제의 심복 부하인 핑, 팡, 퐁이 들어와 지금까지 투란도트에 반해 수수께끼를 풀려고 도전했다가 죽은 13명의 청년들에 관해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며 하루빨리 공주의 마음이 풀려 사랑의 밤을 맞이하기를 빈다.
[제2장 ㅣ 궁전 안뜰] 군중들이 칼라프의 수수께끼 풀이과정을 보려고 모여든다. 왕의 옥좌 근처에 8명의 현자가 수수께끼의 답을 갖고 서 있다. 관리들이 군중을 양쪽으로 갈라 세우자 정면의 커다란 층계위에서 황제가 나타난다. 황제는 이 수수께끼 풀이의 청혼의식이 엄정한 것임을 젊은이에게 알린다. 곧 투란도트 공주가 등장하여 아리아 "이 궁전 안에서(In questa reggia)"를 부르기 시작한다.
오랜 옛날 선조였던 아름다운 여왕이 적에게 붙잡혀 능욕당하고 죽은 원한을 갚기 위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알리며 문제를 내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떠 다니고 모든 사람이 찾아 헤매며, 밤에 생겨났다 아침에 죽는 것은?" ..... "희망(La Speranza)", "불길같이 타오르고 저녁 노을처럼 붉으며 때로는 꽁꽁 얼어붙기도 하고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은?" .... "피(Il Sangue)", "불을 붙이는 얼음이란?" ..... "투란도트(Turandot)".
이렇게 칼라프는 차례로 문제를 다 맞추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청중은 기쁨의 환성을 지르지만 정작 칼라프가 수수께끼를 다 맞춘 데 대해 화가 난 공주는 결혼하기 싫다고 황제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황제는 한번 한 서약은 굽힐 수 없다고 단호히 딸의 요청을 거절한다. 황제 부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칼라프가 "만일 내일 아침까지 이곳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자신은 결혼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내 놓겠다(Il mio nome non sai. Dimmi il mio nome. Dimmi il mio nome prima dell'alba, e all'alba morir?…)"고 공주에게 제의한다.
제 3 막
[제1장 ㅣ 궁전 안의 정원]
별빛 쏟아지는 밤. 삼엄한 분위기가 온 도시를 감싸고 있다. 왜냐하면 투란도트 공주가 북경의 모든 관리들에게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낼 때 까지 그 누구도 잠자면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칼라프가 성 안에서 혼자 조용히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노래한다.
핑, 팡, 퐁은 미녀와 갖가지 금은보화를 미끼삼아 칼라프의 이름을 밝혀내려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갑자기 티무르와 류가 붙잡혀 들어온다.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이 그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므로 핑이 이제야 기회가 왔다는 듯이 서둘러 나선다. 류는 티무르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그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며 자기만이 그의 이름을 안다고 주장한다.
병사들이 갖은 고문을 다 가해도 그녀는 결코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투란도트 공주가 나타나 어쩌면 그토록 모진 악형에도 이기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류가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비밀"이라고 대답한다. 더욱 고문이 심해질수록 "얼음으로 둘러싸인 공주님의 마음도(Tu che di gel sei cinta)"하고 절창한다. 자기는 이제 죽지만 공주님도 머지않아 그를 사랑하게 되리라고 말한 뒤 고문관리의 단검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티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을 더듬으며 그녀의 주검을 붙잡고 통곡한다.
얼마 후 사람들이 류의 시체를 들어내고 차츰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난다.
혼자 남은 투란도트 공주에게 칼라프가 조용히 다가와 따뜻이 사랑의 말을 속삭이자 이윽고 그처럼 얼었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Principessa di morte!Prin cipessa di gelo!( 죽음과 같은 공주여! 얼음과 같은 공주여!"라고 칼라프가 노래하며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을 호소하고 투란도트를 그의 품에 안고 열정적으로 키스를 한다.공주의 차가운 마음도 점점 녹아 눈물을 흘린다.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Del primo pia no(넘치는 눈물)" 이라는 유명한 아리아로 답한다.
그는 잔뜩 도사리고 있는 공주의 몸을 느닷없이 와락 껴안으며 입을 맞춘다. 입맞춤에 공주의 마음은 완전히 풀리고 눈물마저 글썽거린다. 이에 칼라프는 투란도트 공주의 귀에 대고 "나는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러자 투란도트 공주가 갑자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젊은이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소리친다.
[제2장 ㅣ 궁전 안]
날이 밝고 군중들이 모여있다. 공주가 황제 앞에서 "드디어 이 사람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곧 칼라프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며 긴장한다. 공주는 "그의 이름은... 사랑~!" 이라고 외치자 긴장했던 모든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하고 그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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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을 푸치니의 3대 명작이라 부른다. 그러나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예술세계의 최정점에 위치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앞선 다른 오페라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개성적인 독창성과 다채로운 음악어법을 자랑하는, 푸치니 최후이자 최고의 오페라이다.
"투란도트"는 그 소재부터가 푸치니의 이전 오페라들과는 확실하게 구별될 정도로 독창적이다. 각각 일본과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나비부인"과 "서부의 아가씨"에서 이국적인 소재를 솜씨있게 다뤄내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선보인 바 있는 푸치니지만, "투란도트"는 이국적일 뿐만 아니라 고대 전설시대 중국에서 펼쳐진 가공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또한 신랄하고 유쾌한 풍자극 "쟈니 스키키"를 제외한다면, 그의 오페라 대부분은 남녀 주인공의 이별과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반면, "투란도트"는 두 주인공이 사랑의 기쁨과 환희를 누리는 사랑의 승리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제재가 신비적이긴해도 "투란도트"의 줄거리 자체가 상징적인 심오함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용감한 칼라프 왕자와 남성혐오증이 있는 투란도트 공주는 그 어떤 추상적 개념을 표상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사랑'이란 주제를 놓고 갈등하는 전형적인 낭만적 영웅들의 설화적 변용일 뿐이다. 따라서 "투란도트"의 예술적 가치는 드라마 자체보다는, 복잡하고 현대적인 그리고 너무나도 매혹적인, 푸치니의 다채로운 관현악법에서 찾는 것이 옳다.
잘 알려진대로 푸치니는 다른 작곡가들의 관현악법을 철저하게 연구, 그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섭취하는데 열심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푸치니의 음악은 지나친 센티멘털리즘 때문에 '키취 (Kitsch, 예술적 폐기물)'라는 평가를 자주 듣지만, 사실 그의 관현악법을 잘 분석해보면 당대 첨단의 진보적 음악어법이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손에 의해 달짝지근한 매혹적인 선율로 탈바꿈되어 청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었던 것이다.
그의 유작 "투란도트"의 경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이 주요 참고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다만 푸치니는 바그너가 악극을 통해 구현코자 한 이념적 메시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신비감이 넘치는 바그너 관현악의 반음계적 무한선율과 감성적인 색채감만이 그의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오페라 "투란도트"에는 바그너적 유도동기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안단테 소스테누토로 연주되는 오페라의 첫 화음은 사나운 투란도트의 동기이며,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서 흘러 나오는 유창한 선율은 바로 칼라프의 사랑의 동기라는 식이다.
복조성의 음향효과 또한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토스카"와 "나비부인" 등 이전 작품에서도 자주 쓰였지만, "투란도트"에선 완숙한 관현악법과 더해져 동양적인 신비감을 강조하는 완전히 새로운 선율로 나타난다. 푸치니가 즐겨쓰던 또 하나의 음악어법인 드뷔시류의 인상주의적 기법도 이제는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는 3막 첫머리의 환상적인 화음진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5음 음계와 4음 음계를 번갈아 사용하여, 전음계 음악에 익숙해져 있던 이탈리아 청중들에게 조성의 모호함이 던져다주는 신비감을 창조해낸 것과, 뒤뚱거리듯 불균형적인 8분의 5박자로 동양적인 선율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 푸치니만의 탁월한 능력이다.
"투란도트"의 가장 큰 음악적 특징이라면 대편성의 관현악이 가져다 주는 음향적인 풍요로움과 이탈리아 오페라에선 보기 힘들었던 폴리포니적인 구성을 들 수 있다. 5성부로 폭넓게 구성된 바이올린과 비올라, 무대 위와 뒤에 배치된 트럼펫, 트럼본, 색소폰. 그리고 팀파니, 트라이앵글, 북, 심벌즈, 공, 첼레스타, 탐탐, 글로켄슈필 등 온갖 종류의 타악기들은 "투란도트"를 푸치니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입체적인 음향효과를 갖게 만들었으며, 칼라프는 현, 투란도트는 목관과 현, 류는 목관과 현 솔로, 세 사람의 대신들은 피콜로와 첼레스타, 황제는 트럼펫을 위시한 금관 등의 식으로 각 인물과 그를 표상하는 악기들을 조합한 뒤 폴리포니적 선법을 세련되게 구사함으로써, 복잡하면서도 심오한 심리묘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폴리포니적 구성이야말로 "투란도트" 해석의 열쇠가 되는 것으로, 1970년대 이전까지의 "투란도트" 음반들은 이 점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했었다. 요컨대 "투란도트"의 성공적인 해석을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이탈리아 오페라 특유의 성악적인 아름다움에다가, 이 작품 고유의 광휘로운 음향효과를 서로 잘 연결시키는 데 있다.
작곡과 초연
1920년, 푸치니는 18세기 베네치아의 작가 카를로 고치가 쓴 "투란도테 (Turandotte)"란 우화극을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고 그해 여름부터 대본작가 주세페 아다미, 레나타 시모니와 함께 대본 초안 작업에 들어갔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소재를 다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푸치니는 이번 "투란도트"야말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어떤 강력한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확신했음인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초인적인 열정과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쏟아부으며 자신 스스로와 대본작가 아다미, 시모니를 끊임없이 채찍질해댔다.
가혹할 정도로 완벽성을 추구했던 푸치니였기에, 1년 남짓만에 완성된 1막 이후로는 도대체 작업의 진척을 볼 수가 없었는데, 특히 '전설 속의 중국'이라는, 자신의 이전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몽환적인 배경은 푸치니 스스로 그 자신의 예술가적 자질에 큰 회의를 품게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 무엇을 느끼게 할 정도로 푸치니를 매혹시킨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어려움과 고민 속에서도 투쟁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2막을 완성해낸 푸치니는 1923년 6월이 되어서야 3막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특히 원작에는 없으면서도 전형적인 푸치니적 히로인이라 할 노예 류의 죽음 장면의 경우는 멜로드라마의 대가답게 완숙한 작곡 솜씨로 빠르게 마무리를 지었으나, 문제는 류의 죽음 다음에 전개되는 두 주인공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간의 '사랑의 2중창', 그러니까 갈등의 매듭을 풀고 우주적 사랑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피날레 2중창에 대한 예술적 영감이 작곡가의 머리에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푸치니가 마지막 사랑의 2중창을 미완으로 남겨 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후두암에 따른 건강악화였지만, 또다른 연구에 의하면 결국 천성적으로 비극작가일 수 밖에 없었던 푸치니로서는 오페라의 마지막을 비극의 정화 (katharsis) 대신 사랑의 희열어린 승리로 끝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의 정신세계 범위 안에선 수용하기 힘든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어쨋든 당시 푸치니가 남긴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 대본작가와 친구들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를 통해서도 푸치니가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바친 땀과 열정, 운명적인 고뇌를 모자람없이 짐작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그의 건강은 수술을 통해서도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브뤼셀에서의 후두암 수술을 마친 뒤 얼마되지 않은 1924년 11월 29일, 결국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마지막 2중창의 완성을 보지 못한채 푸치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푸치니가 사망하자, "투란도트"의 저작권자인 리코르디 출판사의 사장 티토 리코르디와 푸치니의 둘도없는 예술적 동지 토스카니니는 오페라의 피날레를 대신 작곡할 인물을 급히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당시 토리노 음악원 원장으로 있던 푸치니의 친구이자 후배 프랑코 알파노야말로 자신의 개성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푸치니의 음악적 스타일을 큰 왜곡없이 살려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로 생각되었다.
알파노는 푸치니가 남겨놓은 23페이지 분량의 단편적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앞선 장면에서 제시된 몇 가지 동기들을 활용해가며 오페라를 마무리지었고, "투란도트"는 1926년 4월 25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역사적인 초연을 갖게 되었는데, 이 공연에서 토스카니니가 푸치니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푸치니가 작곡한 3막 '류의 죽음'까지 지휘한 뒤 지휘봉을 내려놓고 관객에게 돌아서서 "마에스트로가 작곡한 것은 이 부분까지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일화이다.
한편 리코르디 출판사는 최근에 현대음악가 루치아노 베리오에게 알파노가 작곡한 마지막 2중창과 피날레 부분의 개작을 의뢰해 "투란도트"를 아끼는 오페라 애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