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찬양학개론

@로마의휴일 2007. 10. 31. 14:41

찬양학개론

시편 95편, 150편을 통한 찬양학개론
(일부 내용만 기재)
강의 : 한만경 목사(춘천북지방 소망교회)

■ 찬양의 역사?
찬양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있었다
욥기서 38장 7절의 말씀은 "그 때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느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찬양하는 백성이었다. 이들에게 찬양이 솟구쳐 오를 때는 이들의 삶 역시 생동하는 승리의 삶이었다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구원을 베푸실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했고, 또 찬양할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체험하였다.(역대하20:21~22; 여호사밧 대 모압때, 성가대의 기원) 제사장의 나팔소리에 성이 무너지고, 성가대의 찬양에 적군이 자멸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신약의 교회도 찬양하는 교회였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하도록 부름 받았던 것이다.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옥중가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자 옥문이 열리고 그들의 결박한 사슬이 풀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시편 외에 찬양에 대한 중요한 성경을 든다면, 구약의 역대기서와 신약의 요한계시록을 들 수 있다. 역대기서는 지상에 존재한 다윗 왕조에서 출발하여 다가올 메시야 왕국을 암시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은 천상의 나라를 보여주면서 역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예견하고 있다. 두 성경의 공통점은 왕국의 분위기가 찬양에 휩싸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필수요소가 찬양에 있다는 것이다

찬양이 울려 퍼지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며 구원과 치유와 화해의 사건들이 생기며 모든 속박과 어두움으로부터 자유와 기쁨을 맛 볼 수 있게되었다

■ 찬양이란 무엇인가?
*찬양은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의 훌륭한 점을 드러내어 그를 높이는 일체의 표현이다(꼭 노래로 만이 아닌, 박수. 춤. 시. 악기. 방언. 외침)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어떤 일을 하시는가? 를 고백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을 고백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과 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놀라움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이는 것(예 : 김일성과 기쁨 조 공연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러므로 찬양의 출발점은 우리의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장애인, 기분이 안 좋다, 병자 등등의 조건이 무효함)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신뢰이다
☞상황과 조건을 넘어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찬양은 시작된다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일에서 출발하지만,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역사의 주관자, 세상의 통치자(지배자)]
*찬양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모시는 것이다
*그 분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찬양이 있는 곳에는 빛이 있다. 어둠이 발 을 붙이지 못한다
*찬양이 있는 곳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추한 것이 물러간다
*솟아오르는 기쁨과 넘쳐흐르는 사랑이 있다
*찬양은 하나님 나라를 가장 하나님 나라답게 만드는 왕관이다(왕의 상징은? 왕관 // 생일의 중심=케익 //찬양=천국)
*찬양은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복되고도 영예스러운 특권이며, 하나님은 찬양 속에 임하시고 일하시며 기뻐하신다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역동적으로 강력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찬양은 능동적이고, 단정적이며 과시적이며 개방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분이 아니겠느냐?"는 식의 고백이 아닌, 주저 없이, 분명하게, 확신 있게, 적극적으로 들어내어 놓아 야 할 성질의 것 들이다(기도는 골방, 찬양은 광장..)
'할렐루야'는 '주님을 찬양하라'는 권유나 부탁이 아닌, 단호한 명령어이다
*찬양은 교회에서, 성도가 모인 곳에서,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사적인 곳에서도 모든 곳에서 찬양을 해야 합니다 (어디든지 어느 곳이든지 계시기 때문에)
■ 찬양을 막는 장애물은 무엇일까?-㉮무지
오늘 날 찬양을 막는 골치 아픈 문제점 중의 하나는 '찬양'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찬양에 무지한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찬양의 원리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①개인적인 생각 ②비 성서적인 전통으로 돌출 되어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진리를 모르면 망하게 되고(호세아 4:6),
진리를 알면 자유함을 누린다(요한복음 8:22)
어둠을 탓하지 말고 등불을 밝혀라
무지를 통탄하지만 말고, 힘써 배우고 열심히 가르쳐라!

☞찬양의 종류는?
*할랄 ~ 자랑하다, 떠벌리다 의 의미로 열렬히 찬양하는 것을 뜻한다.(누군가를 사랑할 때 생각과 마음이 온통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게되고 흥분된 마음이 일어, 좀 바보스럽기 까지 할정도의 벅찬 감정과 상태)
*바락 ~ 축복하다 찬송하다''송축하다'의 뜻으로 복을 기원할 때 사용된다. 축복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식이다. 축복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삶의 풍성함이 드러난다. 삶 속에서 누리는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면서 그분의 성품 전능, 인자, 진실..등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야다 ~ 손을 들어 고백하고, 선언하는 감사와 찬양을 의미한다. 야다는 '고백'에 그 핵심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 하신 일을 인정 또는 고백하는 하는 것이다. 더욱이 '야다'는 환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놓고 빈손을 주께 맡겨 "오직,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전쟁으로 완벽한 승리,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또한 '야다'이다
*토다 ~ '토다'는 '야다'의 명사형으로 인간의 죄나 하나님의 성품, 하신 일에 대한 고백 또는 감사찬양으로, '야다'가 결단이요 선택이라면, '토다'는 열매가 된다. 즉 감사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예식이나 예물과 함께 관련되어 사용되거나 아예 감사로 드리는 예물이나 예식을 뜻하기도 한다. 환난 속에 처했을 때, 환난 너머의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토다'를 드리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자마르~ 지금까지의 네가지 찬양들이 노래나 연주와 함께 드려질 수는 있으나 본질적인 관련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마르'는 '연주하다' '노래하다'라는 뜻을 가진 찬양어로 이것의 명사형인 '짐 라'는 '노래','음악' 그리고 '미즈모르'는 '시'라고 번역되어 노래와 악기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찬양을 가리킨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춤 , 콧 노래, 악기연주, 시 등등...)하나님과 그 하신 일에 대한 감격을 크게 표현하고 그 감격과 기쁨의 도가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 찬양을 막는 장애물?-㈏감정기피
찬양이나 기도등에서 일체의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하려는 태도는 찬양에 방해가 된다.(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라! 이성적인 사랑은 성장이 없다). 찬양은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배웠다. 감정도 예외일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의 감정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쪽으로 순종해 있느냐? 라는 것이다. '할랄'은 끓어오르는 감격과 감정을 가지고 우리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하는 찬양이다

■ 찬양을 막는 장애물?-㈐염려
염려가 가지는 위험성은 처음에는 미비하지만 우리 마음을 천천히, 그리고 슬며시, 부정적인 불신적인 수동적인 비판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영혼에 심각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초조함과 무기력함으로 전락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둘로 나누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기도도 막히고, 찬양도 막히고, 영혼이 질식하고, 삶이 우선 순위가 뒤죽박죽이 되는 혼란이 초래된다(택배물건을 기억해 보라! 온전히 잘 전달될 것이다)

■ 찬양을 막는 장애물?-㈑자의식
찬양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중 아마도 자기를 의식하는 상태나 행동의 자의식이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운동 경기를 관람하러 왔을 때에 경기만을 관람해야지 외적인 것에-앞사람의 옷차림, 무얼 먹고 있는지 등등...- 신경을 쓴다면 온전한 경기를 관람할 수 없다. 멋진 플레이에는 박수로 치고, 환호성도 지르고, 훌륭한 연주에는 감동의 표시도 하고, 그 감동을 또 나누고...)
마음에 느껴진 것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찬양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분이신데,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운데,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감격의 표현을 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혹 바리새인이라면..또 몰라도....
자 이젠 올바로 된 찬양을 드립시다!!

춘천북지방 소망교회 한만경 목사

출처 : 행복 충전소(大名*大明*大命)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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