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스크랩] 안드레아 보첼리

@로마의휴일 2007. 11. 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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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빛으로 노래하는 Andrea Bocelli 모음 곡]


01. Canto Della Terra
02. Prayer
03. Sogno
04. O Mare E Tu
05. Volte Il Cuore
06. Cantico
07. Mai Piu Cosi Lant
08. Immenso
09. Nel Cuore Lei
10. Tremo E T'Amo
11. Un Canto
12. Come Un Fiume Tu
13. Mio Padre

[소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가수 Andrea Bocelli]

그는 다른 테너들이 결코 가질수 없는 뭔가를 갖고있다.
그것은 바로 목소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능력이다.
100% 팝이라고도 또한 100% 성악곡이라고도 볼 수 없는 그의 이 격조 높은 "크로스오버"의 향연은 파퓰러와 성악 팬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있다.

그는 유명했던 테너 프랑코 코렐리를 찾아가 그의 문화생이 되었으며 1992년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스타 주케로의 작품 "Miserere"를 주케로와 듀엣으로 불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3년에 산레모 페스티벌에 참가한 그는 "미제레레"를 불러 신인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다시 참가하여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5년에도 그는 전해 우승자로서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그 유명한 "Time to say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 (그대와 함께 떠나리)를 불렀고 이후 유럽은 물론 전세계적인 보첼리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폭발적인 인기는 서정적인 노랫말과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특이한 창법,
그리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려는 듯한 출중한 외모까지 한묶음되어 가히 침범할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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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보첼리 - 월간객석 인터뷰]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본 영혼의 깊은 우물
이탈리아 출신의 한테너가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그 주인공으로 그의 네번째 앨범인 "로만차"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등 전 유럽에서 놀라운 판매량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3백 만장, 독일에서 발매 2주만에 230만장 돌파, 벨기에에서 12주간 앨범차트 1위, 프랑스에서 6주간 싱글차트 1위... 스페인에서는 건국이래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 하기도 했다.

특히 이 앨범에 영어와 이태리어의 두가지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는 "너와 함께 떠나리"는 이 돌풍에서 태풍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첼리는 이 노래의 이태리어 버전인 "Con te Partiro"를 솔로로, 그리고 영어 버전인 "Time to say Goodbye"를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불렀다.

여기에 담겨있는 보첼리의 서정성과 조용하지만 깊은 정열은 점잖은 유럽인들을 매혹시키고 또 열광 시키는 요인이다.

"이 노래는 낭만적인 발라드지요. 나는 특별한 감정을 담기보다는 내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려 했습니다. 선택은 대중들이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와 함께 떠나리"라는 제목을 기쁘게도, 또 슬프게도 해석하는것 같아요.
그리고 이 노래에 담긴 감정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이는것 같습니다."

올해 마흔 아홉살인(58년생) 안드레아 보첼리는 열두살때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우선 그의 신체적 장애에 관심을 돌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보첼리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 담담하게 대답한다.

"사람들이 이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았으면 해요.
비극이라는 것은 자신이 비극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데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토스카나의 시골인 리자티코에서 태어난 그는 네살때 당뇨병을 앓아 시력이 매우 약한 아이였다. 열두살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머리에 공을 맞으면서 받은 충격은 그를 완전히 실명하게 만들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그가 실명하기 전부터 이미 음악에 대해 비범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그는 플루트와 색소폰을 함께 배웠다.

"친척들은 어릴때부터 내게 노래를 시키고는 '저애는 크면 성악가가 될거야'라고 이야기 하곤 했어요."

보첼리의 부모는 아들이 음악에 빠지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단서를 붙였다.
그가 자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공부를 우선 끝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피사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86년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난 후 변호사로 일하며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던 중, 보첼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한사건이 일어났다.
테너 프랑코 코렐리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프랑코 코렐리와의 만남, 그리고 변화]


"아주 어릴 때부터 코렐리의 음반을 들었지요.
그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내게 그와 같은 테너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꿈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를 세계 제일의 테너라고 생각해요.
그의 목소리는 매우 강하고 아름다우면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정열에 가득차 있지요."

이 전설적인 테너는 보첼리의 목소리를 들어보고는 그를 자신의 제자로 맞는 것을 허락했다.
법률가로서의 길을 포기한 보첼리는 레슨비를 벌기 위해 밤이면 클럽에 나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시각 장애자인 보첼리에게 변호사라는 안락한 길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는기꺼이 '밤무대의 가수'가 되기를 감수했다.
클럽의 손님들은 대부분 그에게 친절했다.

그 손님들 중에는 장차 아내가 될 엔리케도 있었다.
두 사람은 91년 결혼했다.
1992년이 시작될 때 까지만 해도 그는 코렐리에게 레슨을 받으며 밤이면 클럽에 나가 노래하는 무명가수였다.

그러나 이해가 저물무렵, 그는 일약 이탈리아인의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이탈리아의 록음악 작곡가인 주케로가 신작인 '미제레레'를 자신과 함께 부를 테너를 찾기위해 오디션을 연 것이다.
이 노래를 같이 작곡한 그룹 'U2'의 멤버 보노는 아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교섭하자고 주케로에게 제의하고 있었다.

"안드레아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그는 다른 테너들에게 없는 그 무엇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것은 바로 영혼의 울림이었습니다!"

주케로는 보첼리의 음성을 담은 데모 테이프를 파바로티에게 들고 갔다.

"주케로! 이 목소리가 대체 누구요?" 파바로티는 주케로 에게 물었다.
"당신은 더이상 내가 필요 없겠군요.
안드레아 이상으로 이곡에 어울리는 가수는 없을거요."

주케로와 보첼리, 두 사람이 듀엣으로 부른 '미제레레'는 곧 공전의 히트를 기록 했다.
주케로의 유럽 순회 공연 무대에서 왕년의 테너 카를로 베르곤치를 연상 시키는 음성으로 푸치니의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를 부르는 맹인 테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역시 이탈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은 가수답게 보첼리는 대중가요나 칸초네에 담긴 서정적인 멜로디를 아주 매력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다.

주케로는 보첼리가 파바로티와 함께 노래할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보첼리는 파바로티의 집에 초청되어 한 주일을 함께 보냈던 일을 아주 즐겁게 회상했다.

"파바로티는 물론 대단한 가수이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선생이기도 합니다. 그의 집에서 음악과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한주일은 내게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지요.
그때서야 노래가 나의 길이라는 것을 확신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바로티는 94년에 두번째로 열린 자신의 자선 콘서트 "파바로티와 친구들"에 보첼리를 초대했다. 두 사람은 함께 마스카니의 '아침의 노래'를 불렀다.
96년에 열린 범 유럽 투어 '약속의 밤'에서는 무려 1천만명의 시청자가 TV를 통해 보첼리가 부르는 '미제레레'를 들었다.

어느새 보첼리는 국제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호소력을 지닌 보첼리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보첼리 자신이 말하는 '영혼의 소리'인지도 몰랐다.

 

[헨리 마스케를 위해 부른 "너와 함께 떠나리"]

보첼리의 네번째 음반인 '로만차'에 수록된 "너와 함께 떠나리"는 원래 그의 두번째 음반인 "보첼리"에 이태리어로 수록되어 있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영어 버전이 담긴 "로만차"는 특히 독일에서 발매 2주만에 230만 장이 팔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96년 11월에 독일의 스포츠팬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권투경기가 벌어졌다.
라이트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던 헨리마스케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것이다.
마스케는 오랜 선수생활중 보여준 굳센 투지와 쾌활한 정신으로 독일인들의 '록키'로 사랑받는 선수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친구인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만이 노래를 불러주기를 원했다. 브라이트만은 그를 위해 다른 노래를 준비했지만, 마스케가 '방송에서 들었던 이탈리아어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그 노래가 잊혀지지 않는다.'며 그녀에게 '너와 함께 떠나리'를 불러주기를 부탁해 왔다.

브라이트만은 급히 보첼리를 만나 노래의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고, 마스케의 경기 직전, 두사람은 듀엣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너와 함께 떠나리/ 바다로 배를 타고서/아니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너와 함께 나는 거기서 다시 살리라..."

브라이트만과 보첼리의 목소리에 실린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는 마치 마스케를 위한 것처럼 그 상황에 딱 들어 맞았다. 관중들은 그제야 그들의 영웅이 마지막으로 링에 오른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미친듯이 열광했다.

"마치 강력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분위기 였어요.
나는 볼수 없었지만 그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비록 마스케는 이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인 미국 챔피언 버질힐에게 패하고 말았지만 관중들은 경기의 승패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마스케에게 끝없는 환호를 보냈다.

보첼리는 자신이 자칫 잘못하면 클래식 가수로서 보다는
팝가수로 알려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내 마음이 닿아 있는 곳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들은 바로 로시니와 베르디, 푸치니이고, 이러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매일 두시간씩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로만차'를 통해 대중들이 내가 크로스 오버음악을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사람들이 내가 부르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좋아 한다면, 나는 그러한 음악을 담은 가장 좋은 음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카루소 역시 많은 칸초네들을 노래했지만 누구도 그를 대중가수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그의 네번째 음반인 '로만차'가 크로스 오버 음악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면 세번째 음반인 '이탈리아인의 여행'은 보첼리의 스타일이 가장 잘 표현된 음반이다.

이 음반에서 보첼리는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여자의 마음'같은 오페라 아리아들로부터 '아베마리아''생명의 양식'등 정통 클래식 성악곡들, 그리고 '오나의 태양', '무정한 마음' 에 이르기 까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주옥 같은 클래식 명곡들을 들려주고있다.


-글 전원경 기자-


출처 : 메 아 리
글쓴이 : 메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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