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다찌아노, 아테나고라스

@로마의휴일 2008. 9. 17. 20:31

앞에서 살펴본 성 유스띠노 외에 호교론자들이 많지만, 2세기 교회 상황을 잘 엿볼 수 있는 다찌아노와 아테나고라스를 비교하여 보도록 하자.


10.1. 다찌아노

다찌아노는 120년 경에 시리아의 이교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에 와서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후 그는 성 유스띠노의 제자가 되지만, 희랍철학과 이교사상에 대한 입장과 신앙의 태도에서는 스승과 생각을 달리 하였다. 유스띠노는 [로고스 신학]을 통해 이성과 신앙, 학문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였던 반면, 다찌아노는 이교문화를 일체 배격하면서 희랍문화와의 극단적인 단절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생활 면에서도 극단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는데, 172년에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영지주의의 성격이 농후한 [금욕주의자들]의 한 분파를 세움으로써 정통교회에서 떠났다. 이들은 엄격한 희생과 극기를 이상적인 생활로 생각하여 결혼생활도 간음과 같은 부당한 것이라 하고, 일체의 육식과 주류를 금했다. 그의 극단적 금욕주의는 인간 육신을 천시하는 영지주의적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찌아노는 의미있는 두 편의 저서인 [희랍인들에게 고함]과 [디아떼싸론]을 남겼다. [희랍인들에게 고함]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호교론적인 저서이다. 이 저서에서 그는 이교문화와 희랍철학을 멸시하고 배척하며, 그 비도덕성을 여러 각도에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하느님의 초월성, [로고스]의 역사하심, 인간창조, 부활, 공심판, 그리고 자유의지, 천사의 타락, 아담과 하와의 범죄, 타락한 천사와 악신 등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희랍문화에 비해 그리스도교의 고대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부도덕하고 식인종들이라고 하는 그릇된 소문에 근거하여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역설하였다.

한편 [디아떼사론]은 성서학적으로 흥미로운 저서인데, 4복음서에 중복되어 나오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즉 [예수 전기]형식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성서정전이 확정되기 이전까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에서 공적 전례에 사용할 정도로 권위를 갖고 있었다.


10.2. 아테나고라스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는 다찌아노와 동시대인으로서 그의 생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탄원]과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란 저서만이 전해져 오고 있다. 우아한 필체와 논리의 정연함으로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는 다찌아노와는 달리 희랍문화와 사상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탄원]은 177년 경에 당시의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그의 아들 꼬모두스에게 보낸 호교론적 저서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허위 고발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부당한 박해를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탄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다음 세가지의 허위고발에 대해 구체적으로 변호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유일신 신앙을 토대로 한 계시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임을 입증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식인종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종교인들보다 인간의 육체를 중히 여기고 있다고 강조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근친혼자(近親婚者)들이 아니며 오히려 건전한 윤리생활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동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한편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하여]는 직접적으로 호교론적인 저서는 아니지만, 인간 육신의 부활을 부인하던 당시의 희랍사상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을 설파하고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인간의 전인적(全人的)인 구원을 위해 육신을 부활시키시어 영혼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생전에 육신과 함께 악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영혼만 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는 부당하며, 육신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상선벌악의 결과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육신의 부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3. 토착화에 대한 교회의 태도

희랍문화에 대해 다찌아노로 대표되는 배타적인 태도와 유스띠노와 아테나고라스로 대표되는 수용의 태도는 2세기 교회가 당면하고 있던 고민을 말해주고 있다. 이교문화 특히 상당히 발전되어 있던 희랍사상권 안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가 이교문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즉 다신교적인 문화를 악마의 소산이라 단죄하여 완전히 배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유익한 요소들을 수용하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룰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교문화를 수용할 경우에는 복음의 순수성을 잃게 되고 일종의 종교적 혼합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완전한 단절만 주장한다면, 그리스도교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자기 울타리에 갇혀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선교 사명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복음의 [토착화]라 할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고민과 논쟁은 그 후에도 계속되지만 결국 타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교부들은 희랍문화를 수용하였지만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를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그리스도교를 중국에 선교할 때 중국의 전통문화를 수용하려는 시도를 교회 당국이 금지시킨 사례, 또 우리나라에서 유교적 제사를 수용하지 못하고 금지시킴으로 인해 불필요한 박해를 초래했던 사례는 교부시대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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