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서중석 교수가 6.10항쟁 26주년인 10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6층 첨단강의실)에서 고별 강연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고별 강연을 하라고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한다'고 하니까, 내가 떠나야 할 것 같고 슬퍼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것 같은데."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는 지금도 현역이고, 고별 강연이 끝나도 현역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상징적 존재다. 서 교수 본인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울대 국사학과 67학번인 서 교수는 1968년 6·8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이던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는 등 모진 세월을 겪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 지리, 국어를 좋아했다. 유별나게 역사를 좋아해서 앞으로 역사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왜 현대사를 하게 됐느냐?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끝나고 대학 시험 면접을 보러갔을 때 읽은 책이 에드먼드 윌슨의 <근대 혁명 사상사>(원제는 To the Finland Station, <핀란드역으로>)였다. 거기에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다. 면접을 볼 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행동과 공부하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역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면서 학생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을 대학교 3학년 올라오면서 끌어들였다고 생각을 하고, 유인태(현 민주당 국회의원)도 그때 친해지기 시작했다. (…) 그때도 나는 나중에 교수 해먹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웃음) 유홍준도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인데, 유홍준은 당하지 않고 내가 당했다.(웃음) (…) 군대 말년에 유격 훈련을 했는데, 거기에서 유신헌법 전문을 보게 됐다. 유격 훈련 안 받고, 병장이니까 도망갔는데, 숨어서 하루 종일 읽고 또 읽었다. '정변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났구나' 했다. 제대하고 복학했다. (유신 반대 운동을) 유인태와 작당했다. 그게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하더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수감됐다. 학교 역시 수차례 제적됐다 복교하기를 반복했다. 30대 중반이던 1984년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또한 1979년부터 9년간 <신동아> 기자로 수많은 르포르타주를 썼다. 학문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금기이던 시대, 서 교수의 지행합일 정신은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현대사 연구를 개척한 인물로 학계에 우뚝 서 있다. 진보적 역사 전문 계간지인 <역사비평> 초대 주간을 맡았다(관련 기사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수많은 책을 써 냈다. 그는 "역사를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이 숙제"라고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2010년, 서 교수는 뜨거웠던 1987년을 다룬 <6월항쟁>을 펴냈다. 환갑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그것은 사회의 주류가 된 이른바 '486 세대'에게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6월항쟁이었던 셈이다. 6월항쟁의 주역과 그 목격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데, 왜 지금 역사 왜곡이 넘쳐나는가. 노(老)교수는 고별 강연을 통해 맹렬히 질문을 던졌다.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은 날, 67학번 서 교수는 말 그대로 여전히 "현역"이었다.
▲ 서중석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노교수의 질타 "진보 세력, 왜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 못하나"
서 교수는 "요새 참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최근 있었던 <동아일보> 자회사 <채널 A>, <조선일보> 자회사 <TV조선> 등이 보도한 5.18 역사 왜곡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서 교수는 "방송이라는 것은 책임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600명의 북에서 온 특공대가 광주 전남도청을 점령했다? 참 신기하다. 달나라를 점령했다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한국현대사학회 인사들이 참여한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한 데 대해서도 "뉴라이트 관련자들의 (교과서 관련) 학술 대회를 지원한 신문사가 '남로당식 사관을 중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지금 중학생 역사 교과서가 남로당식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하더라. 기존 교과서 집필자 90%가 좌파라니, 이것을 인간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데 대해 놀랐다. 이런 시기까지 내가 사는구나 했다"고 성토했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일이 2004년 뉴라이트의 탄생을 전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전에 친일파 옹호론자들은 '일제 시기에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것'이라고 '애소(哀訴)조'로 얘기를 하거나 '당시 나뿐 아니라 다 협력하고 그랬잖나'라며 3000만을 친일파로 만들었다면, 2004년의 (뉴라이트) 논리는 다르다. 대놓고 '친일파가 우리 사회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을 180도 뒤바꾸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논란도 충격적이었다. 정말 역사 교사들 힘겹게 살더라. 그러더니 또 한 정부가 들어서니까 바로 이런 일(교과서 왜곡 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이른바 "진보 진영의 무능"을 비판했다.
"내가 분노하고 비통한 것은 (냉전 세력의 역사 왜곡)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진보 세력 때문에 그랬다. 진보 세력이라는 자들이 이런 (뉴라이트 등의) 논리에 대응 한 번 제대로 했느냐. 1995년, 세 개의 (보수) 신문이 일제히 이승만 재평가를 연재할 때 <역사비평>에서는 네 차례 굵직하게 그 문제를 다뤘으나…(별일 아닌 듯 넘어갔다.) 2003년, 2004년 소위 (뉴라이트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왔을 때 수구 언론은 요란한데 거기에 대해 (진보 진영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나?
2008년 건국절 논란 때에는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유와 혁명의 역사, 이상과 희망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나쁘게 쓰고 친일파를 살리기 위해 광복을 건국절로 포장을 한 것인데, (진보 진영은) 대항 한 번 못했다. 이런 썩어빠진 지식인들이 진보적 지식인들인가. 노인네들이 훈장 반납하고 그렇게 싸우지 않았다면 정말 (8.15가) 건국절이 될 뻔했다. (…) 나는 (…) 진실과 사실이 교육되고 밝혀지면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이상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老)교수의 고민은 계속됐다. 그는 "6월항쟁, 광채 나는 투쟁을 겪으면서 우리가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주의의 큰 대로를 열어놓았다. 그런 대로에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신군부 정권에 붙어먹던 사람도 많은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수구 냉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거 안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어 "진보 세력이 1980년대 수구 냉전 세력을 몰아붙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논리는 도식적으로 적당히 배운 것이었을 뿐이고, (젊은 사람들이) 그 이상 공부를 안 하더라. 그러니 수구 냉전 세력이 그렇게 나와도 대응을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정말 현대사가 중요한 때가 됐다. 나도 쉬고 싶다. 고별 강연이라고, 강연 제목을 줬으니 사라져야 할 것"이라며 "후배분들, 좀 잘 싸우자. 좋은 논문 쓰자.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현대사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크고 많다"고 당부했다.
이날 고별 강연에는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강의실에 빈자리가 없었고, 자리를 얻지 못한 50여 명은 선 채로 서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서 교수의 '동지'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인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 학계 후배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참석했다.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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