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스크랩] 사도신경 바로알기 - 하편

@로마의휴일 2007. 7. 11. 14:22

 

 

 

사도신경 바로 알고 고백하기 글을 12편으로 나누어 일반 자료방에 올렸었으나

카페지기님 의견이 약 3편으로 편집하여 전레학 교실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으로

3편으로 편집을하여 올리는 과정에서 그동안 관심을 보여주셨던 회원님들의(맑은숨님, 등등..)

댓글이 오류에 의하여 삭제될수 있음을 사과드립니다.

 

사도신경 바로 알기 - 하편

 

10. “죄의 사함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는,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주시고자함이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당신 사업을 세상 마칠 때까지 맡아보는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 안에 죄를 사하여 주는 권리를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헛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3)하시면서 똑똑히 죄를 사해주는 권리를 주셨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로써 죄를 사해 주심을 믿는다.

 



인간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희생,

플로리스, 1562년, 캔버스에 유채, 165 x 230cm
프란스 플로리스의 서명이 들어간 이 작품은 매너리즘 화가들의 전형적인 우아함이 뛰어난
부드러운 스타일로 그려졌는데, 자연그대로 남김없이 복잡한 종교적인 메타포로 변형되어
나타나 있다. 밝은 색채로 입혀진 빨간 옷을 입은 세례자 요한은 앞쪽에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데,
예수는 거대한 암탉의 날개가 단 채 포도덩굴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데 그를 중심으로 성 루크와
성 마태오의 복음으로 상징된 어미 닭처럼 주변에 죄를 회개하려는 수많은 죄인이 모여있다.
이는 완벽함과 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신도들을 나쁜 길로 이끈 그들 자신이 불쌍한 양치기였던 교황과 바리새인들 위에는 악마의 정령이 떠있고, 반대로 왼쪽 위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천국을 향해 서 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보수적인 구교와 프로테스탄트 신교의 경계선 위에서
인간의 진실한 믿음의 문제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마사초 <그림자로 병자를 고치는 성 베드로>
230 x 162 cm, 1426 -27, 피렌체, 카르미네 성당
예수의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로 늘 흰머리에 흰 수염으로 그려지는 베드로가
파란색 튜닉에 누런 색 망토를 걸치고 뒷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배경은 서민들의 주거지이다.
베드로의 뒤를 요한이 따르고, 그들 옆에는 이 사도들의 그림자만이라도
스치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빨간 모자를 쓴 중년남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맨발의 남자, 어깨를 휜히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헐벗은 늙은이,
마지막으로 앙상한 다리를 드러내놓고 있는 나이 어린 앉은뱅이. 이들의 경제적, 신체적 상태는
화면 앞쪽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되어 보인다. 화가는 앞 쪽의 가여운 두 남자에게
그들의 병을 낫게 해줄 기적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마사초는 피렌체에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카스텔로 산 조반니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겨우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에는 요절한 천재 화가들이 많지만 마사초만큼
짧은 시간 안에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화가도 드물다. 당시의 그림을 보면
마치 동화책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복장의 귀족이나 성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산골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온 마사초에게 이 같은 화풍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가난과 빚 독촉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사는데 급급했던 그로서는 현실의 문제를 그려내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구걸하는 거지, 헐벗은 가난뱅이, 앉은뱅이 등은
그의 그림의 단골손님들이다. 마사초는 성화(聖畵)에 미천한 사람들을 등장시킨 최초의 화가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범하기를, 누구나 신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그는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11.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이 표현은 부활이 막연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상적인 의미의 사건이아니라, 구체적으로 몸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나는 말이다. 보통 부활이라고 하면 영혼이 계속 살아남는 것을 생각하는데, 인간의 존재를 가늠하는 데 몸도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가 부활 후에도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신 것을 보면, 우리의 몸이란 결코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1606~1669)
엠마오의 그리스도  The risen christ at emmaus
1648, 판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68*65cm

(제자들은 함께 걸으면서도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엠마오스에서

빵을 나누는 순간에 뒤늦게 부활하신주님이심을 알았다.) 



12.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영원한 삶이란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영원한 삶이란 참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는 말은 인격적인 깊은 사귐을 통해서 인격적인 만남으로 아는 것이다. 곧 사랑의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 하느님은 영원하신분이시다. 영원한 분이신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친교를 나누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요한 5,24) 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삶이란 무작정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삶을 의미한다. 영원한 삶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이 관계는 우리가 육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와 육신을 벗고 신성한 몸을 이루는 미래에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천국, 틴토레토, 1578∼79년, 캔버스에 유채, 143 x 362cm

이 작품은 베네치아에 있는 "팔라조 듀칼레"의 대형 회의실 벽화 작품인 <파라다이스>를
제작하기 위해 그려진 초벌 그림이며, 루브르 박물관이 1799년에 베네치아에서 입수한 컬렉션이다.
놀라운 창작력과 창의력을 가진 틴토레토는 당시에 유행하던 고전적인 우아한 회화 양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티치아노의 색채와 미켈란젤로의 소묘 기법을 자신의 회화에 도입했다.
다수의 티치아노 작품에서 강렬한 터치와 창의적인 각도로 그림의 주제를 분석하는 시도가 엿보이는데,
이 작품에서도 틴토레토의 성서 해석이 기존의 회화 방식을 벗어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지상 천국"을 말해주는 이 그림의 제목을 따라가면, 천국이 존재하는 곳은 하늘 위가 아니라
지상이라는 것이 틴토레토의 해석이다. 나선형으로 한 점을 향해 올라가는 배치는 공간 원근법을
극대화시켜 한 점을 향해 수많은 인물들과 구름들이 모아지는 그 소실점을 절대적 공간,
즉 신이 주관하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소실점이 위치한 주위로 신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틴토레토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초벌 형태의 이 그림은 이처럼 하나의 완성된 주제를 회화 형식과 주제를 결합시켜 표현하고 있는데,
현실 세계를 벗어난 천국의 신비스런 공간이 모호하게 묘사되어 있다.
강렬한 색채가 지상과 천국의 경계를 구별짓지 못하게 하고, 겹겹이 띠를 두른 무겁게 떠 있는 구름들과
지상의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 또 그 위에 여기저기 포즈로 자리한 인간 군상들은 한층 더
이 그림을 초자연적인 세계로 이끌어간다. 강렬한 빛이 가운데로 모이게 만드는
원근법이 효과적으로 적용된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말년의 작품 <최후의 만찬>이 있다.



결론


사도신경은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이다. 가끔씩 생활 중에 내 신앙에 대해 자신 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까지 내 자신이 신앙 안에서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나의 신앙을 표현하는데 뭔지 모를 석연치 않은 생각으로 신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이유일 것이다.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면서 묵상하다보면 우리가 신앙을 갖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확연히 드러난다. 신앙인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며 살아나가야 하는 목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참으로 좋은 신앙 고백 문이다. 여기에는 살아생전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의 영광과 장차 우리에게 다시오실 그분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는 초대 교회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기다렸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그들이 지녔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절개를 깊이 묵상하며, 현재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며,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나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계명을 실천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많은 성인들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간직했던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안젤리코(Fra Angelico) 영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
이탈리아의 화가, 도미니크수도회 수도사

 

 

 

성흔을 받는 성 프란체스코, 지오토, 1297년, 패널에 유채, 313 x 163cm

이 그림은 전설적인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이야기하는 28편의 작품들에
속한 것인데, 이 그림들은 모두 지오토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이 성자를 숭배하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순례자들을 위해,
성인이 태어난 아시시에 있는 교회를 장식했던 것이다.
젊은 시절 부유하고 걱정 없는 삶을 영유하던 그는 계시를 받고
기도와 빈곤, 그리고 자비의 삶을 택한다.
어느 날 산 속에 고립되어 있는 그의 은둔처에서 기도하던 중,
그는 6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인 지품 천사(세라핌)를 보게 된다.
이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였으며, 기적으로
그에게 그리스도의 성흔을 전해 준다.

이 그림에서는 능숙한 필치에 의해 표현된 물결 모양의 형상이
천사의 상처를 프란체스코에게 전달하고 있다. 즉 손과 발에 있는
각각 두 개의 못자국과 허리 부분에 꽂혔던 창 자국이 그것이다.
이 장면에서 원근법의 탄생을 엿볼 수 있는데,
비록 모든 부분의 비율이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지오토는 이 그림을 3차원의 공간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의 삶을 살아온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흔을

우리는 역사와 증인으로부터 확인된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어야함을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절실하게 나타내신것이다.

 

 

사도신경 바르게 알고 고백하기를 마감합니다.

결론에 올려진 그림은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영광을 받으셔야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후에

성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셨으며

주님은 영원하심을 보여주신(성흔으로) 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할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 입니다

( 모든 글의 내용은 정요한 수사님의 사도신경 해설의 원문을 참조하였으며

그림은 여러 자료를 수집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 전례음악
글쓴이 : inter 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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