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바흐의 성악곡 (칸타타)
성악곡 (칸타타) 오늘날 독일인의 음악생활은 바흐의 칸타타 없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독일의 방방곡곡에 있는 교회에서 주말에 열리는 교회연주의 레파토리는 바흐의 칸타타가 항상 중심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연주회가 수없이 열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서민들이 연주장을 가득 메우는 한 독일은 참된 음악문화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바흐가 활약하던 18세기 전반에도 이 같은 상황이었다고 추측할 수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바흐의 칸타타는 오늘날처럼 연주용으로 쓰이기보다는 매주 일요일이나 축일예배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었고 몇 시간이 걸리는 당시의 예배를 장식하는 바흐의 칸타타는 작은 파리(klein Paris)로 자처하던 라이프찌히의 시민에게는 두터운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군주인 작센(Sachsen) 선제후 등의 탄생일이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서도 칸타타가 연주되었다. 당시 라이프찌히에서 유행하던 카페하우스에서는 바흐가 직접 지휘하는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이 협주곡뿐만 아니라 칸타타도 연주한다. 이 같은 칸타타를 <교회 칸타타>와 구별하기 위해 <세속 칸타타>라고 부르고 있다. 바흐의 생애 중 칸타타가 점유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바흐의 사후에 나온 밋츨러(L. Ch. Mitzler, 1711-1778)의 추도기에 의하면 바흐는 약 300곡의 칸타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바흐는 뮐하우젠시대(1707-1708)로부터 바이마르시대(1708-1717), 쾨텐시대(1717-1723)를 지나 라이프치히시대(1723-1750)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칸타타를 발전시켰기에 바흐예술의 진수는 바로 칸타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흐가 남긴 BWV. 232는 1749년경에 완성되었고 다른 4개의 소규모 미사곡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걸작으로 바흐음악의 모든 요소를 한층 높은 수준으로 결합시킨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5)“바흐가 30년에 걸쳐 사용한 여러 약식의 백과전서”라고 마샬(Robert L. Marshall)은 평가하고 있다. 바흐는 5곡의 수난곡을 남겼다고 하지만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뿐이다. 바흐의 교회음악을 대표하는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마태수난곡>BWV. 244은 바흐가 죽은 뒤에 1829년 3월에 베를린의 징아카데미가 젊은 멘델스존의 지휘아래 연주해서 바흐 음악의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2개의 부분으로 구분된 것은 바흐 시대에는 2개의 부분사이에 설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1부는 29곡으로 구성되어있고 제2부는 39곡으로 되어있어 전부 68곡의 엄청난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