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生涯와 著書
1. 生涯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出生에서부터 그의 삶의 몇몇 年代와 場所, 內容 등등이 文獻 不足으로 明確치 않은 것들이 있다. 그런 境遇 筆者는 가장 近似하게 推定되는 通說을 따라 아래에 記述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나폴리 近處 로카세카 城에서 1225年 혹은 1226年에 아퀴노의 伯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父母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5살 때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修道院에 奉獻하여 入院케 하였다. 그 後 後日의 聖者이며 위대한 學者가 될 토마스 아퀴나스는 1239年까지 즉 皇帝 프레데리쿠스 2世가 몬테카시노 修道院의 修道者들을 쫓아낼 때까지 거기서 勉學하였다. 이때 少年 토마스는 집으로 돌아와 몇 달 머문 後 같은 해 다시 大學에서 工夫를 繼續하기 위해 나폴리로 갔다. 1239年부터 1243年까지 토마스는 나폴리 大學에서 修學하였다. 이때 四學科 敎授는 히베르니아의 페르루스였다. 이 사람은 스스로 아리스토텔레스의 註解도 쓴 사람이다. 토마스가 처음으로 그리스 哲學者들과 接觸하게 된 것은 이 敎授에 의해서였다.
當時 나폴리에는 새로운 托鉢 修道宗團인 도미니코회가 있었다. 토마스는 그들의 生活에 깊은 感銘을 받고 그 修道會에 入會하였다. 그러나 貴族인 그의 家門은 토마스가 이런 微賤한 修道會圓이 되는 것을 容忍하지 않았다. 그들은 토마스가 敎會의 高位聖職者가 될 수 있는 傳統 있는 몬테카시노 修道會에 入會하기를 원하였다. 이때 도미니코회 總長은 토마스를 對同하고 볼로냐로 떠났으며 토마스를 파리 大學으로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이 事實을 안 토마스의 家族들은 그의 兄弟들을 시켜 途中에서 그를 拉致하여 아퀴노城에서 약 1년간 監禁하였다. 토마스는 이 監禁生活 中 美女의 侵入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克復하고 初志를 貫徹할 수 있게 되어 마침내 도미니코회에 入會하게 되었다. 그는 1245年 가을에 修學次 파리로 떠났다.
토마스는 1245年에서 1248年 여름까지 파리에 머물렀다. 그 後 토마스는 大 알베르투스를 따라 쾰른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大 알베르투스 밑에서 1248年에서 1252年까지 硏學을 繼續하였다. 당시 普遍博士라고 指稱될 만큼 博學하였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학과 깊은 連結을 갖고 있었던 大 알베르투스에게서 토마스는 적지 않은 影響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알베르투스는 토마스의 開放的인 精神 形成에 커다란 影響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토마스는 1252年에서 1255年까지 파리 大學에서 聖書學과 命題集을 講義하였으며 1256年에는 正敎授가 되었으며 그 後 1257年에 프란치스코 修道會의 보나벤투라와 같이 敎授團에 받아들여져 파리 大學에서 講義하게 되었다. 토마스는 1259年까지 이 講義를 繼續하였다. 1259年 토마스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1268年까지 敎皇廳 所屬 學院과 여러 곳에서 講義를 하였다.
敎皇 알렉산델 4世(1259-1261) 밑에서는 아나니에서, 敎皇 우르바노 4世(1261-1264) 밑에서는 오르비에토와 로마의 산타 사비나 修道院에서, 그리고 敎皇 클레멘스 4世(1265-1268) 밑에서는 비테르보에서 講義하였다. 토마스는 또한 1260年 나폴리에서 열린 도미니코회의 로마 管區會議에서 重要한 職責인 修道會 顧問職에 推戴되었다. 敎皇 클레멘스 4世는 토마스에게 나폴리 大主敎職 授與를 提案했으나 토마스는 固辭하였다. 토마스는 敎皇廳에서 有名한 그리스어의 라틴어 翻譯家 뫼르베케의 윌헴을 알게 되었다. 이 만남은 오르비에토에서였다. 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著書들을 믿을 수 있게 飜譯하여 토마스에게 提供하였을 뿐 아니라 프로클로스,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텔레스의 註解者인 아프로시리아스의 알렉산델, 터미스티오스, 암모니오스, 요한네스 필로포노스, 심플리코스 등도 라틴어로 飜譯하였다. 이런 飜譯들은 토마스 哲學에 심대한 意義를 갖는다.
토마스는 1269年부터 1272年까지 다시 파리 大學에서 講義하였다. 이 時期에 그의 學文 生活은 決定에 이른다. 이 時期에도 첫 번 파리 滯留時期와 마찬가지로 修道者 敎授職에 反對하는 在俗 聖職者들의 끈질긴 妨害에 부딪힌다. 이런 論爭 이외도 아베로에스 學派들과의 論爭이 있었다. 또한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批判的으로 受容하며 自己의 學說을 發展시켰다. 그러나 토마스는 어떠한 論爭 中에서도 恒常 平溫과 客觀的 態度를 維持하며 眞理만을 追求하였다. 1272年 以後에는 이탈리아에 머물며 修道會 學校들과 나폴리 大學에서 講義하였다. 토마스는 敎皇 그레고리오 10世에 의해 리옹 共議會에 招請되어 가던 途中 나폴리와 로마 사이에 있는 포사노바의 치스테르치안 修道院에서 1274年 逝去했다.
토마스는 中世紀 代表的인 哲學者며 神學者다. 그는 西歐思想 形成에 至大한 影響을 미친 思想家이다. 그의 思想은 斷片的이며 斷絶的이기 보다는 連續的이며 體系的이고 包括的이며 總體的이다. 그의 哲學的, 神學的 思想은 時空을 超越한다. 그는 眞理 追求에 忠實했으며 眞理를 사랑하고 眞理를 산 聖者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共通의 博士 더 나아가서는 天使的 博士라는 稱號로 불린다. 그는 비록 50세가량의 나이로 生을 마쳤지만 지금 사람들로서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많은 著述과 世界와 人間과 神을 總括하는 넓은 領域에 걸쳐 深奧한 探究와 빈틈없는 論理를 展開하였다. 더욱이 萬年의 그는 聖者的 怳惚境에서 삶을 榮位하였다. 그는 1323年에 聖人으로 宣布되었으며 1879年에는 그의 哲學說이 교황 레오 13世에 의해 가톨릭敎會의 公式 學說로 認定되었다.
2. 著書
토마스는 수많은 哲學的, 神學的 著書들을 남겼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哲學的 內容을 담은 主要 著書들을 紹介한다. 토마스는 다음과 같은 네 滯留 時期에 걸쳐 主要 著書와 註解書 그리고 哲學的, 神學的 小著作 등 수많은 著述을 하였다.
• 第1次 파리時期(1252-1259)
• 이탈리아(로마, 오르비에토, 비테르보 등) 時期(1259-1269)
• 第2次 파리時期(1269-1272)
• 나폴리 時期(1272-1274)
이 滯留時期들의 年代는 一般的으로 큰 異論 없이 認定된다. 그러나 그의 著書의 著述年代에 대해서는 學者들에 따라 多少의 異論이 있다.
바오로 출판사에서 정의채 신부님의 번역으로 현재 16권까지 출판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모르겠으나 한권 한권 워드로 작성하여 올려볼까 합니다. 혹시 저작권법에 위배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나마 해서 한사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것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책값이 제 경우에는 큰 부담....
로마어 본문을 생략하였습니다. 혹시 한자보시기에 불편하신 분은 메일 주십시오. 한글판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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