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哲學의 特性
토마스의 哲學은 本質的으로 實在論이며 經驗的 具體에 根據한다. 토마스는 第一, 즉 形而上學은 存在를 存在로 考察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思考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結局 토마스가 志向하는 것은 人間 精神이 把握할 수 있는 實存하는 存在의 說明이다. 달리 말해 토마스는 實在가 演繹되는 어떤 槪念도 前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實在하는 世界에서 出發하여 그 存在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存在하는지, 그 存在의 條件이 무엇인지를 探究한다.
그뿐만 아니라 토마스의 思考는 모든 存在事物의 根據로서의 最高存在 혹은 存在의 充滿인 存在 自體, 自立的 存在 自體 즉 自存的 存在에 集中한다. 이런 思考는 具體經驗世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具體的이며 經驗的인 存在事物과 關聯하여 그 有限性과 由來性을 透視하여 存在를 다른 데서 받지 않는 源泉的 存在 自體에 이른다. 이런 意味에서 토마스 哲學은 이른바 ‘實存哲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토마스가 오늘의 實存主義者라는 뜻은 아니다. 實存主義者들의 實存은 토마스의 esse와 다른 뜻을 갖는다. 存在에 이르는 方法도 서로 다르다.
事實 토마스는 存在를 哲學의 核心으로 말함으로써 本質의 哲學, 특히 플라톤의 影響下에 있는 哲學들을 넘어간다. 플라톤이 存在問題를 度外視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哲學의 顯著한 性格은 世界를 그 存在性에서보다는 本質性에서 說明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도 純粹現實은 먼저 思考 혹은 理念의 性格을 띤다.
그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世界問題에 있어서도 그 形相과 秩序 그리고 그 展開의 可知的 過程을 說明하려 했으나 世界의 存在를 說明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런 說明이 必要치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네오 플라토니즘에 있어서도 世界의 由來 혹은 流出은(存在가 排除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一般的으로 먼저 本質의 流出을 意味하는 것이었다. 神은 一者이며 善 自體이지 自立的 存在 自體는 아니었다.
토마스 哲學의 또 다른 一面은 그의 創造說이다. 創造說은 먼저 存在의 問題다. 이 創造說은 그리스 哲學이 유다主義나 그리스도교主義와의 連結 없이는 到達치 못했던 說이다. 크리스천 哲學者들이 이 世界를 神에서 流出되는 것으로 네오 플라토니즘的 用語를 쓰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또 토마스 自身도 어떤 때 그런 表現을 使用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神에 의해 自由롭게 創造된 것을 뜻한다. 즉 自立的 存在 自體한테서 存在를 받는 것을 뜻한다. 토마스가 神은 自立的 存在 自體라고 할 때 그는 神을 一次的으로 思考나 善으로 본 것이 아니라 存在로 본 것이다.
토마스는 哲學者일 뿐만 아니라 神學者이고 修道者이기 때문에 靈魂의 神에 대한 關係를 主張하고 있다. 그러므로 토마스가 現代의 어떤 哲學者들이 한 바와 같이 主觀에서 그 哲學을 始作한 것으로(事實 보나벤투라에게서는 이런 痕迹이 나타난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其實 토마스 哲學은 客觀性에 根據하여 成立된다. 人間 知性의 直接的 對象은 質料的 事物의 本質이다. 토마스는 그의 哲學을 感覺經驗에의 反省으로 成立시킨다.
예컨대 토마스가 提示하는 神 存在를 위한 證明은 恒常 感覺的 世界에서 神에로의 論證이다. 토마스가 더 明白한 길이라고 부르는 論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論證에 根據한다. 토마스의 아리스토텔레스的 客觀性은 眞理는 主觀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混沌되는 것이겠지만 이런 客觀的 論證은 確實히 强力한 效力을 그 自體 안에 갖는다. 토마스의 哲學은 보나벤투라의 境遇와는 달리 그 自體로 有效한 것이며 自律的인 것이다. 그렇다고 哲學만으로 充足하다는 뜻은 아니다.
토마스는 分明 크리스천 哲學者이나 存在를 存在로 考察하는 形而上學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른다. 그러나 그의 思考는 具體的 存在事物을 說明하려 한다. 그리고 모든 存在事物의 根源을 찾는 “第一哲學 全體는 窮極目的으로서의 神의 認識을 志向한다. 그러므로 神의 認識은 모든 人間 認識과 作用의 窮極目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人間은 이 地上生活에 있어서 自然理性으로 얻을 수 있는 神의 認識보다 더 깊고 더 內密한 認識을 갖도록 創造되었다. 그러므로 이 地上生活에서 自然理性만으로 到達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어떤 것에 到達하기 위해 啓示가 必要하다고 생각한다. 形而上學은 그 自體로 自體 目的을 가지며 自律的이다.
그러나 그것은 世界內 存在事物 以上의 것을 指示하여 神學의 世界와 連結된다. 토마스에 있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人間의 삶은 情意의 充足도 必要로 한다. 그러기에 存在의 根據로서의 神의 認識은 神秘와 結付되어야 한다. 토마스에 있어서 哲學은 自律的 學文이다. 그러나 哲學的 知識만은 充足한 것도 最終的(窮極的)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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