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유럽 발효식품의 상징 - 치즈 이야기 관리자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07-06-12 오전 01: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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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험을 100일 앞두고 ‘100일주’라는 것을 챙겨 마시던 때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처음으로 바(bar)라는 곳에 가서 국산 화이트 와인과 노란색 체다치즈가 얹어진 크래커를 안주로 놓고 한껏 분위기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전문 와인 바가 곳곳에 생겨나고 읽기도 어려운 유럽의 치즈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은 실제로 치즈를 즐겨 먹는다. 치즈가 빠진 식탁은 상상 할 수가 없다. 해외토픽 같은 화면을 통해 많이 봐왔던 네덜란드의 치즈 시장도 있고 얄미운 생쥐 제리가 좋아하는 스위스의 에멘탈도 있지만 유럽에서 치즈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이태리와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고 그 중에서도 단연 프랑스를 최고로 친다. 프랑스의 전쟁영웅이자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골은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 공식석상에서 ‘365가지 치즈를 만들어 내는 나라의 국민을 하나의 이념으로 통치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프랑스의 다양한 국민성을 치즈에 빗대어 얘기한 적이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치즈의 종류는 1000여 가지가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집집마다 김치의 맛이 다르지만 누구네 집 김치가 유명하고 어느 종가 집 김치가 특별하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모두 김치의 한 종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이름이 붙여진 ‘공식’ 치즈는 300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치즈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분류해서 생치즈, 연성치즈, 반경성 치즈, 경성 치즈, 가공치즈 등의 형태로 나누기도 하고 혹은 염소젖 치즈, 블루 치즈처럼 원재료나 독특한 특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치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들 알다시피 치즈는 우유를 응고시켜 만드는 것인데 인간이 양과 염소를 사육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치즈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3000년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여지는 고대 수메르의 고적지와 로마 시대 병사들의 식량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치즈를 만드는 제조소의 유적을 보면 이미 수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인간의 식생활과 함께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치즈가 프랑스에서는 단순한 음식의 하나가 아니라 식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자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된 것은 지방마다 독특한 우유가 생산되었고 그것을 이용한 특산물로서 치즈가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냄새와 맛으로 치즈의 매력 음미 치즈에 이름을 붙일 때는 대부분 그 치즈가 생산된 지방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의 경우 대부분이 AOC(원산지 명칭 통제) 제도의 규제를 받아 생산되기도 한다. AOC의 통제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아니더라도 프랑스에서 와인과 치즈의 궁합은 이미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얘기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와인과 치즈를 즐길 때는 같은 지방의 와인과 치즈를 매치시키는 것을 최고로 친다. 즉,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에는 부르고뉴 치즈를, 보르도 지방의 와인에는 같은 지역의 치즈를 곁들이는데 각 지방의 특산품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둔 이러한 와인과 치즈의 매칭은 어쩌면 프랑스 식 문화의 원천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치즈 전문가들은 치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한 접시 위에 여러 가지의 치즈를 조금씩 잘라서 담는 것을 제안한다. 맛을 볼 때는 부드러운 맛에서 강한 맛으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것이 좋은데 치즈에 있어서의 매력 중 하나가 코를 찌르는 진한 냄새라고 본다면 냄새와 맛을 동시에 느끼고 음미해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치즈는 밋밋한 향에 강한 맛을 가진 것이 있고 반대로 강한 냄새로 도저히 손이 갈 것 같지 않다가도 맛은 부드럽게 녹아드는 치즈도 있다. 다른 요리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지만 치즈에도 제철이 있다. 각각의 치즈가 내는 최상의 맛은 주원료인 생유의 생산시기와 숙성기간에 달려 있는데, 치즈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되고 그에 따라 형태도 변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절정의 시기에는 최적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치즈라도 사람에 따라 딱딱한 상태, 부드러운 상태, 줄줄 흐르는 상태 등 좋아하는 것이 다르게 나타나듯 치즈에 있어 최절정의 시기란 다소 상대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익숙해진 프렌치 치즈, 까망베르(Camembert) 프랑스의 루아르 강 이북에 자리한 북부지방은 강우량이 충분하고 푸른 초원이 많아 소들이 배불리 풀을 뜯고 양질의 우유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젖소 우유를 원료로 하는 부드러운 치즈가 많이 생산되며 대표적인 것이 까망베르다. 깔끔한 맛이 특징인 이 치즈는 18세기 말엽에 한 농민에 의해 처음 만들어 졌고, 100년이 지난후에 나폴레옹 3세가 노르망디 지방을 방문하다가 그 부드러운 맛에 감탄해 까망베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최상품의 까망베르는 진공포장을 하지 않으며 유효기간이 한달 전후다. 흰 곰팡이로 발효시키고 일체 가공하거나 익히지 않은 제조법이 특징이다.
푸른곰팡이의 로크포(Roquefort)와 소프트 블루치즈의 고르곤졸라(Gorgonzola) 기후가 건조하고 푸른 초원이 적은 남부 프랑스에서는 염소나 양을 많이 사육하고 여기서 얻어진 젖으로 만드는 대표적 치즈가 로크포이다. 한 양치기가 우연히 바위틈에 방치해 두었던 치즈덩어리가 시간이 지나서 푸른색의 곰팡이 발효를 일으켜 알려졌다는 전설이 있는 로크포는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고도 한다. 프랑스에 로크포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고르곤졸라가 있다. 소젖에서 만들어 지는 이 치즈는 로크포의 강한 맛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즐기기 좋은 상큼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블루치즈다. 두 가지 모두 축축하고 깊은 동굴 속에서 전통방식으로 숙성시킨다. 소테른과 같은 진하고 달콤한 화이트 와인과의 매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량생산품으로 친근해진 파르미지아노(Parmigiano) 피자가 우리 식탁해 익숙해 지면서 같이 알려진 파마산 치즈가루.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 라는 지역명에서 명칭이 붙여졌다. 프랑스의 AOC와 같이 원산지 통제의 의미를 갖는 이 치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치즈로 알려져 있고 이 맛을 내기 위해 가루 제품을 대량생산한 미국 식의 명칭이 우리에게는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비슷한 맛과 같은 형태의 그라나 파다노(Grana Padano)도 역시 유명한 이탈리아의 치즈지만 생산 지역이 틀려서 파르미지아노라는 이름을 쓸 수 없으며 가격도 파르미지아노에 못 미친다. 보통 1년 숙성이 되면 출시가 가능하나 2년이 되어야 보다 숙성된 맛을 내므로 이때 대부분 출시가 되며 3년 이상 숙성된 파르미지아노는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하여 음식과 함께 조리하기 보다 그 자체의 풍미를 즐기곤 한다. 와인의 지속적인 열풍과 더불어 국내에도 점점 더 많은 치즈종류가 소개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만간 국내 레스토랑에서도 수십 종의 치즈를 실은 수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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