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스크랩] [구약 입문 1학기 요약해 봤습니다.]

@로마의휴일 2008. 1. 18. 18:41
[구약 입문 1학기 요약해 봤습니다.]
번호 : 3405   글쓴이 : 평화방송산타
조회 : 16   스크랩 : 1   날짜 : 2005.07.13 17:31

[구약 입문 1학기 요약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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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축성되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불리운 우리에게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그것은 가능한가?

창세 12­-50`장에 실린 성조들의 이야기와 출애굽기 후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해방과 구원이 무엇인지 거울처럼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다. 특히 출애굽 사건과 시나이산 계약은 구약성서 전체의 중추를 이루는 사건으로 그 구약성서에 구구절절 재독되고 있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느님이다.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과 출애굽, 사막생활, 시나이산 계약이라는 일련의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우신 권능과 예측할 수 없는 하느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인간들과 사물을 이용하시어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선익을 도모하시는 하느님, 더할 나위 없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느님의 은혜로운 베푸심을 가슴 깊이 체험하였다.

출애굽의 출발점이 되는 열 가지 재앙은 단지 놀라운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해방과 구원이라는 커다란 안목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야훼 하느님을 섬기는 자유로운 백성으로 삼기 위해 해방시키려는 시도는 야훼를 대표하는 모세와 이스라엘을 노예상태로 잡아두려는 완고한 파라오 사이의 극적인 대결로 나타난다. 파라오가 반항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위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이 투쟁에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시는 분은 하느님이다.

여기서 성서의 기본 주제가 밝혀진다. 즉 역사는 하나의 결전장으로서 구원계획을 실현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세력과 당신을 반대하는 암흑 세력이 맞부딪혀 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마지막 책인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나타나는 중심사상이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하느님이시고, 하느님 편에 선 사람이라는 것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완전히 밝혀진다.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가게 해주는 하느님의 세력과 암흑과 파멸로 몰고 가는 악의 세력 간의 싸움은 우리와 무관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빛과 선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안에 일어나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바오로 사도도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적나라하게 체험했기에 이렇게 감명 깊게 토로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로마 7,19)

시나이 계약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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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의 해방 자체가 최종목적은 아니었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압박과 멸종에서 건져내실 뜻으로만 해방시키신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어떤 이들에게는 단기간 또 다른 이들에게는 장기간에 이루어질 계획을 당신 백성에게 두고 계셨다. 하느님과 이 백성이 함께 책임을 지고 온갖 모험을 무릅써 가면서 성취할 하나의 역사(歷史)가 마련되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이 전기 예언서(預言書)라고 부르는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권에 실린 역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생생한 한 편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정착하여 남북왕국으로 분열된 후 패망과 함께 바빌론 유배에 이르는 한줄기의 역사이지만, 작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행로에서 겪고 있는 각자의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여호수아기는 기원전 1200`년경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전략을 총동원하여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되는 정착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영토 확장은 가장 큰 충동 중의 하나다. 일찍이 비옥한 반달지역도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가나안 땅은 기름지고 풍요한 곳이라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더욱 들볶였다. 이 좁은 땅덩이를 놓고 작은 나라들은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큰 나라들은 영토확장을 위해 거칠고 잔인하게 싸웠다. 히브리인들도 이런 활극(活劇)무대에 들어선 것이다.

당시 상황은 전투에 익숙해졌고, 정복 의욕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던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기에 아주 적절한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가능했던 것은 비옥한 반달지역의 역사적인 상황, 즉 그곳의 지형, 가나안 문화, 이집트­메소포타미아간 정치적 세력이 초점이 된 정치 관계가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을 구하셔서 가나안에 정착게 해주셨다는 이스라엘의 신앙도 이러한 역사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바라봄으로써 생겨났다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토록 그리던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가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을 모시고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 신들을 선택할 것인가를 분명히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분은 이제 야훼를 경외하며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시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여호 24,14`­`15)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은 출애굽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광야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야훼 하느님의 권능과 현존을 뼛속 깊이 체험하고 나서 시나이산 계약을 통하여 일체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야훼를 자기네들의 유일한 하느님으로 섬기겠노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금송아지 사건(출애 32`장 참조)으로 금방 체결한 조항 중 가장 중대한 조항을 깨뜨렸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 수준으로는 우상을 섬길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모양으로든 일체의 우상숭배를 금하였는데 그들은 보이는 신을 만들려는 유혹, 하느님을 물질화하려는 유혹에 말려든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이 문제는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여행과 가나안 정복이라는 고충스러웠던 세월이 아니라, 가나안 정착 이후 이민족들의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접하면서 생기게 된 유혹들이다. 이스라엘은 시나이산 계약을 통하여 체결한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을 받드느냐 이방인의 신과 풍습을 따르느냐의 갈림길에서 늘 방황하였다. 이러한 역사가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무엘과 사울의 등장과 함께 왕정제도를 수립하고 그후에 엮어지는 왕정사 속에서 계속된다.

판관시대에 접어들면서 모세를 이은 강력한 통치자 여호수아가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하도록 독려해줄 인물이 없게 된다. 여호수아의 세력에 위축되었던 인근 부족이 히브리 사람들 손에서 벗어나 보복을 가하고 억누르기 시작하였다.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곤욕을 당하도록 버려두고 그들이 죄를 깨닫고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애원하면 특정한 인물인 판관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역사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면 즉시 행복이 오고, 죄를 지으면 즉시 벌을 면치 못한다는 유치한 상선벌악 사고방식을 떠나 하느님 자녀라는 봉헌의 본질적인 의미를 깊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마침내 삼손이 적수들에게 눈알이 뽑혀 옥에서 연자맷돌을 돌리는 세월, 그러면서 그의 머리가 자라나는 세월은 반성과 참회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힘을 얻어 적수들`―`불레셋 사람들`―`을 몽땅 죽여버리는 승리의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한 판관의 이야기이지만, 하느님께 봉헌된 이스라엘의 각 사람, 세례로 하느님께 봉헌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화로 재독(再讀)해볼 때 그 안에 담긴 심원한 진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에도 기원전 1030`년경`­`586`년에 해당되는 히브리 백성의 중앙집권 체제하의 통일국가를 이룬 시대의 역사가 실려 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국왕 밑에서 급작스러운 군사·정치적 대국으로 번성하였다가 그후 점차 국운이 기울어지고 주권을 잃고 말게 된다.
이 역사도 여호수아나 판관시대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시나이산 계약에 비추어 서술되고 있다. 하느님의 보우와 가호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봉헌된 민족으로서 충실한가 불충실한가를 대종으로 삼는다.

왕정시대의 군주는 바로 백성들의 불충실을 대표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자의 사명은 하느님 이름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도록 백성을 인도하여 계약과 율법을 잘 지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왕 자신이 솔선수범하여야 했다. 초대 왕 사울은 하느님 눈 밖에 나는 짓을 계속하여 사무엘은 사울을 제쳐놓고 다른 인물을 물색한 끝에 다윗이 ‘성별된 왕’으로 축성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수도로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여 모든 지파의 신임을 받는 뛰어난 정치가로서, 선량한 왕으로서 백성들을 이끌어간다.
영토가 확장되고 대내외적으로 국가가 기반을 잡고 안정을 누리게 되자 다윗은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바쎄바를 범하고 빼앗는 행위, 하느님 뜻에 걸맞지 않는 병적조사를 행하는 등의 탈선행위로 그의 왕가와 나라 안에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다윗의 통치사는 이스라엘 역대 임금들뿐 아니라, 통치의 책임을 맡고 있는 모든 정치가, 크고 작은 각 공동체의 책임자들, 가정의 부모들이 어떻게 슬하의 사람들을 인도해 나가야 할지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이스라엘 왕직은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직(王職)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감사드립니다.
출처 : 꽃동네는 행복하세요.[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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