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헌장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와 구원
계시헌장
1항; 하느님의 계시와 그의 전달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을 천명하며 온 세상이 구원의 선포를 들음으로 믿고. 믿으며 바라고 바라며 사랑하고자 함이다
2항;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 신다.
3항; 천상적 구원의 길을 터 주시고자 하셨고 또한 원조들에게 처음부터 당신 자신을 드러 내 보이셨다.
절대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들어내시는 것을 계시라 한다.
절대자는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 속에 영원한 빛 속에 현존하시기 때문에
제한된 시공간과 부패된 역사라는 조건 속에 던져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절대자와 통교할 수 없다. 따라서 절대자가 인간이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인간 역사 안에서 자신을 드어낼 때에만 인간은 절대자를 인식할 수 있는 있으므로 하느님은 계시를 통해서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신다.
하느님께서는 자연의 창조물을 말씀에 의해 이루시고 그 창조물에서 신적 존재의 현존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셨다 이를 자연적 계시라 하여 사도 바오로 한 연설(사도 17,22-27)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자연 만물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업적으로 그 시작이 가능해 진 것으로 인간 본성 자체에 뿌리박고 있는 종교심도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창조된 자연 만물과 인간의 심층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이성을 올바로 사용할 경우 창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공의회도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 될 수 있다(로마 1. 20)는 것을 인정한다(계시헌장6장)
이렇게 자연적 계시 즉 창조물을 통해 우리는 아름답고 훌륭하신 주님을 알아 볼 수도 있지만 아둔한 자(지혜13.1), 용서받지 못한 자(지혜13.8)들이 있다. 이는 창조된 만물을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 할 것이다. 또한 우상에 빠진 자들은 더 가련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지혜13,10-14,31)
인간이 성실한 마음을 갖고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관상하고 양심의 소리를 따라 생활한다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하여 어느 정도 인식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적 계시만으로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자연적 계시는 신비의 영역까지 인간을 이끌지만 그 신비 안으로 인간을 인도 하지는 못 한다 이 영역을 하느님의 초자연적 계시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향하여 오셨고 인간 역사 안에 당신 자신을 직접 드러내셨다. 이를 인식 할 수 있는 것은 초자연적 계시를 통하여 가능하다. 하느님은 자연적 계시를 통한 간접적 관계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당신과 대화하고 일치할 수 있게 직접적인 새로운 관계를 원하시기에 당신을 우리의 아버지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또한, 하느님의 계시는 보편적임으로 그리스도 밖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교회 밖에 존재하는 것이라도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한 모든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존중하고 있다.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되어 있다. ...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교회 헌장 16항)
그러므로 자연 종교나 계시 종교나 모든 종교는 절대자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내적 원의와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종교는 절대자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전제하며 이 관계의 핵심에는 구원의 문제가 있으며 특히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구체적이며 역사적인 초자연적인 개입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계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이니셔티브에 의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는 신적 사건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인간과 대화하고 통교하기를 원하시며, 인간 구원을 위한 당신 뜻을 드러내시는 신적 사랑의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신학은 계시에 대하여 하느님의 ‘자기 계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오콜린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계시의 인격적인 면을 강조한다. 즉, 하느님의 이니셔티브와 인간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위하여 인간의 대답을 요구하시는 신적 사랑에 초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계시는 인격적인 주체와 주체 사이의 만남이고 그 분에 대한 사랑을 더 깊이 알고자 함은 신앙으로써만 이해 될 수 있는 신비적 현실의 고백이고 이는 인간적으로 노력하는 신학인 것이다.
계시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생활함으로써 당신과의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인간을 초대하는 신적 구원 사건으로 계시헌장 2장의 말씀인 바 “당신과 친교를 이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드리 신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항상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시하신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통교 수단은 언어와 표징(행위)이다. 인간은 내적 현실을 언어와 표징으로 표현하고 설명한다. 즉 언어는 결국 사람의 생각, 계획, 결단의 표현이며 마음의 표현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계시도 이와 같다.
구약에서 야훼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신적 구원의 메시지이며 사랑의 말씀이고 구원의 말씀이다. 이런 말씀을 인간이 받아드릴 때 인간은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
하느님은 이런 말씀과 더불어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구원적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다. 계시 사건의 예로는 창조 업적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의 선택, 이집트에서의 해방, 예언, 계약, 기적,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을 들 수 있다.
말씀은 업적을 밝혀 비추고 업적은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 하여 준다.
“빛이 생겨라(창세 1,3) ,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 , 잠잠해져라(마르4,39) ”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과 업적은 하나의 신적 계시 사건을 구성하며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 역사 안에 드러나고 실현된다. 업적과 말씀이 긴밀히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신적 계시는 역사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는 계시의 장소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이 계시 경륜은 서로 긴밀히 결합된 행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들은 가르침과 말씀들로 표현된 사실들을 드러내고 확인하며 말씀들은 업적들을 선포하며 그 안에 포함된 신비들을 밝혀준다(계시헌장 2장)
그러므로 구원 역사 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마지막 의미를 찾게 된다. 즉, 구원 역사의 모든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의 육화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계시를 완성시켜 주는 것이며 이는 인간 역사 안에 드러난 신적 계시가 그리스도 중심적임을 말한다. 그래서 그분을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계시헌장 4장)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끝난 것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기초적 계시, 또는 공적 계시)
“따라서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1티모 6,14 ; 티토 2,13 참조)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계시헌장 4장)
계시헌장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 특히 죽음과 부활은 오랫동안 기다린 구원을 성취하여 주는 계시 사건일 뿐 아니라 하는님과 인간의 ‘ 영원한 새로운 계약’ 의 시대를 열어 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부활은 구원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약속하는 계시 사건인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현실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제시하는 미래 구원 현실을 인식하고 희망한다는 의미이며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구원 역사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리스도를 향하던 구원의 역사는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는 믿음과 희망 속에서 영광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주님은 인류 역사의 종말이요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며, 인류의 중심이시고 모든 마음의 기쁨이며 그 욕망의 충족이시다(사목헌장 45항)
계시헌장 2항은 계시의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골로 1,15; 1티모 1,17 참조) 이 계시로써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탈출 33,11 ; 요한 15,14-15 참조), 인간과 사귀시며(바룩 3,38 참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 (계시헌장 2항)
계시헌장 2항은 계시의 목적을 최종적으로 당신과 친교하며 일치를 이루도록 요구하신다. 계시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삶에 참여한다는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듯 계시의 목적을 일치로 선언하고 있으며 그 일치는 바로 구원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것이다.
느그리스도의 유일한 관심사는 죄와 지옥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의 근본적 특성은 하님과의 일치이다.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두운 세상, 죄악과 죽음이 위협하는 세상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 승리, 감사, 기쁨, 평화라는 구원된 현실이 있다. 역사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구원의 초대, 즉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촉구하는 사랑의 호소이다.
계시와 구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 하느님과의 일치 즉 구원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계시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일치(수직관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일치함(수평관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역사안에 개입되어 있으며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를 “일치의 성사”라 부르며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헌장 1항).
일치의 구원적 의미는 성체 성사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재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가난한 이를 도우면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치하는 삶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을 향한 사람이며 동시에 이웃을 향한 사람이다. 계시의 목적은 삶을 통한 살아 있는 일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선포된 구원의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면을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교회헌장 9항)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드리신다(사도10,35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교회헌장 9항)
따라서 계시의 목적인 구원은 사상적 일치나 학설의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형제들간의 상호 일치이다.’ 이러한 구원적 일치의 관점에서 모든 계시 사건이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 2008 여름학기 과제물 - 기초신학)
통신 교리 신학원 과제물이었는데 지휘자님께서 하신 오늘의 한 말씀(7월 22일)을 읽고 용기를 내어 글을 올려 봅니다. 읽어 보신 분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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